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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 동래구] 대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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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원


- 대관원
051-554-0334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137번길 30

짜장면, 짬뽕과 탕수육이 맛있다고 소문난 중국음식점이다. 주차장은 따로 없지만 인근에 주차 후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탕수육, 짜장면, 삼선짬뽕이 맛있는 곳이다. 동래역 근처에 있는 화교가 운영하고 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짜장면

- 문의및안내
051-554-0334

- 쉬는날
월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1:00 ~ 21:30 (주문마감 평일 20:20 / 주말 20: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가능 (051-554-0334)

- 취급메뉴
짜장면 / 짬뽕 / 우동 / 탕수육 / 코스요리 외

- 포장가능
가능(일부 메뉴)





◎ 화장실
남녀개별 / 업소 내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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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동래향교


- 홈페이지
http://tour.dongnae.go.kr
http://www.cha.go.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1392년(태조 1) 지방에 향교를 지어 유생의 교육에 힘쓰라는 태조의 교서를 받들어 태조 때 와성(臥城,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설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5년(선조 3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중건되었다. 중건 당시에는 읍성(邑城) 동문(東門) 밖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705년(숙종 31)에 부(府) 동쪽 관노산(官奴山) 아래로 옮겼다가, 1745년(영조 21)에 동문 밖으로 다시 이건하였다. 그 뒤 1785년(정조 9)에 내곡동(內谷洞: 지금의 화성초등학교 자리)으로 이전하였으며, 1812년(순조 1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반화루(攀化樓)·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東齋)·서재(西齋)·좌우협문(左右夾門) 등이 있으며, 향교 밖에는 역대 부사들의 흥학비군(興學碑群)을 비롯하여 하마비(下馬碑) 등이 있다. 이 향교의 건물 배치는 문묘와 명륜당이 동서로 구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좌측의 반화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명륜당이 있고, 그 좌우 뜰에 동서 양재가 있으며, 우측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다시 내삼문이 있고, 이를지나 대성전과 동서 양무에 이르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70인 정원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 석전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


- 홈페이지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 http://museum-kcm.or.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02번가길 13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부산 동래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개항기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가 근대 여명기 한국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성경과 찬송가 등 종교적인 전시품 이외에 근현대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소장품들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우장춘기념관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62번길 7 (온천동)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육종학자로 1936년 배추속의 식물에 관한 게놈분석을 시도하여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종의 합성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는 귀국후 그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종자를 국내에서 자급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나라 육종과 원예발전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서 1959년 8월 9일에는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 법륜사(부산)


- 홈페이지
https://www.visitbusan.net/index.do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62 (칠산동)

* 학소대에 위치한, 법륜사 *

법륜사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239-2번지 학소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거칠산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유서깊은 곳으로 1980년 금동관·무기 등이 출토된 바 있는 복천동(福泉洞) 고분군과 학이 집단으로 둥지를 틀고 살았던 학소대(鶴巢臺)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임지왜란 당시 동래 성곽이 두르고 있던 동래경찰서 뒤편의 전신전화국, 동래고교 등 그 성내 그대로가 법륜사와 함께 동래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옛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봉황과 더불어 학을 사랑하였다. 그 단정한 자태와 고고한 모습으로 인해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대접 받아온 학은 때론 청렴하고 지조 있는 선비에 비유되기도 할 만큼 오랜 세월 청정의 이미지를 대신해 왔다. 부산 동래지역은 유난히 학의 이름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도심의 일부가 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 없으나 동래 중심지에 우뚝 솟은 학소대(鶴巢臺)의 모습만큼은 그 옛날부터 학이 깃들만한 명소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채 아름다운 학의 군무(群舞)가 펼쳐지던 바로 이곳에 지금은 법륜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은 불기 2442년, 서기1898년 범어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되어 야학운동을 통한 문맹퇴치와 3.1운동의 본거지로 민중교화와 민족정신을 배양하던 곳이다. 범어사가 1800년대 말, 지금의 부산지역 포교를 위해 개설한 포교당은 모두 5개. 이 중 서면, 영도지역 등 4개 포교당은 모두 없어고 동래 포교당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1백여년의 역사를 통해 근대 영남불심을 이끌어 온 본거지라 할 만큼 대중포교의 중심에 있어 온 사찰이다.이와 같이 법륜사는 포교당으로서 종교적인 기능뿐 아니라 교육, 계몽적인 기능까지 겸했다. 1921년부터 경영한 ‘싯달 야학교’를 통해 배출된 스님들과 빈한한 농민의 자제들이 당시 민족 운동의 일원으로 활약하였고 동래 지역의 3.1운동과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사회운동에 깊이 관여하여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법회를 이은 부산지역 최초의 불교 유치원인 ‘법륜 유치원’을 개원하고 일찍이 중고등부와 청년법회를 개설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고승을 모시고 매년 봉행해온 화엄산림법회는 2005년 현재 75회째를 맞는 등 명실상부한 포교 1번지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민중해방에 앞장서 온 민족사찰로서, 민중포교의 본거지로서 자리매김한 법륜사는 노송림(老松林)에 군학(群鶴)이 군림하듯 수많은 불자가 모여드는 영남제일의 포교명당으로 오늘도 자리하고 있다.

* 법륜사의 유래 *

법륜사가 위치한 칠산동(漆山洞)은 삼국시대 동래지역에 거칠산국(居漆山國)이 존재하여 있었는데, 이를 신라가 병합하여 거칠산군(居漆山郡)이라 하였다가 통일신라 이후 경덕왕 때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東萊郡)으로 바뀌었다. 거칠산은 '거칠다'의 우리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침 뫼' 즉 황령산(荒嶺山)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되어진다. 삼한시대 소국의 치소(治所)가 동래지역으로 옮겨질 때 주산(主山)의 이름을 칠산(漆山)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러한 내력과 지금의 동래읍성의 뒷산을 칠산이라 부른데서 연유한 것으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 부산 복천동 고분군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https://museu.busan.go.kr/bokcheon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

* 가야 시대를 만날 수 있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 복천동 일대의 구릉 위에 있는 가야 때 무덤들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4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아직도 땅 밑에 남아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토광목곽묘), 땅 속에 네모난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땅 속에 시체를 바로 묻는 널무덤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식의 무덤들이 있다. 구릉의 원래 이름을 따서 학소대(鶴巢臺)고분군이라고도 한다. 1969∼1972년 동아대학에 의해 10여 기가 최초로 발굴된 이래, 부산대학이 1974년 구릉 동쪽 사면에 있는 3기의 고분을 발굴하였다.

이후 1980∼1994년 부산대학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6차에 걸쳐 100여 기가 넘는 고분군이 발굴조사되었다. 이 무덤들에는 도굴되지 않은 큰 무덤이 많아 2,000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굽다리접시(고배), 목항아리(장경호), 토제등잔을 비롯한 토기류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적인 토기들이다. 철제 갑옷·투구류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4호 무덤에서 나온 단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갑옷이다. 11호에서 출토된 괘갑은 부속 장식까지 완전하게 갖춘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런 완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는 것이다. 10호 무덤에서 발견된 말갖춤(마구)는 완전히 갖추어진 실전용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이러한 갑옷·투구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다. 복천동 무덤에서는 새로운 무덤양식을 발견하여 무덤의 변천과 흐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의의 *
울산 하대고분군,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도항리고분군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가 보인다. 처음에는 시신이 매장된 으뜸덧널[主槨]과 유물이 매장된 딸린덧널[副槨] 모두가 덧널인 양식이 이용되다가, 으뜸덧널이 구덩식돌덧널이고 딸린덧널이 덧널인 것으로 변해가고, 마지막에는 딸린덧널이 폐지된 단독 구덩식돌덧널로 되었다가 곧 앞트기식돌방으로 교체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굴된 상당량의 토기는 신라 ·가야 토기 편년의 기준이 된다. 또한, 특징적으로 갑옷 ·투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갑옷 ·투구 이외에도 말갑옷[馬甲], 말머리가리개[馬胄] 등 철로 만든 무기가 상당수 출토되어서 당시 말을 이용하여 전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매장시설의 바닥에는 덩이쇠[鐵鋌]가 1∼3열씩 깔리기도 한다. 《삼국지》 동이전 변한조에 철을 화폐 대신으로 쓴다는 기록이 있는데, 덩이쇠가 다른 철제용품을 만드는 재료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화폐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다.

⊙ 복천박물관(부산)


- 홈페이지
복천박물관 http://museum.busan.go.kr/bokcheon/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 (복천동)

복천박물관은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부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고고전문박물관으로 1996년 10월 5일에 개관했다. 7차에 걸친 발굴 조사로 밝혀진 169기의 유구와 각종 토기 및 철기류 등의 유물을 종합전시하였다. 사적으로 지정된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충부한 유물과 다양한 무덤 양식들은 아직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있는 가야의 신비를 푸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또한 복천박물관은 개관 이후로도 인근지역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여 부산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해 나가고 있다. 지속적으로 축적된 연구성과를 다향한 학술세미나 및 특별전을 통해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역사교육장으로서의 역할에도 내실을 기하고 있다.

⊙ 금강공원


- 홈페이지
http://geumgangpark.bisco.or.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 (온천동)

*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금강공원 *

동래 온천장 뒤쪽의 서북쪽에 있는 금정산 해발 801.5m(고당봉) 기슭에 있으며 93만 6천 평의 면적에 자연적으로 자란 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기암절벽 또한 절경을 이루고 있고, 골짜기 마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듣노라면 신선경에 들어선 느낌이어서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다.봄철부터 겨울철에 이르기까지 인적이 끊이지 않는 근린공원으로,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고 옛 동래 도호부에 속한 유서 깊은 이 곳에는 여러가지 문화유적지가 곳곳에 있어 우리 후손들의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지난 1940년 금강원으로 명명되어 오다가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6월부터 유료공원이 되었다. 현재는 2004년 7월 1일부로 무료화되어 시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공원이 되었다.

* 금강공원에서 즐길거리 *

금강공원에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여행객에게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체육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방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이외에 부산민속예술관과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금강식물원 등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 동래문화원


- 홈페이지
http://dongnae.kccf.or.kr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로 80 (명륜동)

* 동래문화 지킴이, 동래문화원 *

21C는 정신적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개선하고 발전 시켜야 할 점들이 많다. 이런 사안을 명확히 숙지하고 솔선수범하여 바른 길을 만들고자 개원한 곳이 동래문화원이다. 특히, 동래는 예부터 부산의 중심으로써 중요 문화재와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동래문화원이 동래문화의 지킴이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동안 구청으로부터 시행하던 동래읍성역사축제를 비롯한 3개 문화행사와 삼충록을 비롯한 동래제영 잡저 등과 매년 동래문예지를 발간하는 등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 동래문화원의 다양한 행사 및 프로그램 *

동래문화원은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학교로 지정 받아, 연중 동래학춤, 풍물,사군자, 서예 등의 문화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또한 동래구민들의 문화 여가선용과 문화학교학생들의 “1인 1기예” 실현이란 목표 아래 쉼 없는 노력으로 부산의 어느 문화학교에 뒤지지 않는 토대를 닦아 왔다.

동래문화원의 행사와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동래 3.1독립만세운동, 동래읍성역사축제, 임진동래의총제향, 향토사료조사연구, 문화학교 운영, 토탈공연 및 전시, 문화유적탐방, 향토문화예술지발간, 동래읍성되쌓기 사업, 동래사랑마이홈러브카드 제휴발행, 찾아가는 문화원, 통합복권기금사업(소외계층 문화체험) 등

⊙ 동래문화회관


- 홈페이지
https://www.dongnae.go.kr/culture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로 80 동래문화회관

동래문화회관은 부산 유일의 숲속공연장으로 공연장 주변에는 동래읍성과 복천박물관 그리고 장영실 과학동산이 자리 잡고 있어 공연은 물론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부산의 대표공연장이다. 대극장(524석), 소극장(200석), 야외공연장(1,130석), 전시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우리 문화회관은 열린 휴식공간으로 마음 따뜻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개관일 : 1999년 10월

⊙ 동래읍성지


- 홈페이지
https://www.visitbusan.net/kr/index.do

-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칠산동)

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고려말~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공을 위시한 모든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군에 맞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임진왜란 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을 쌓았는데, 이 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다.

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 하였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설치하였는데, 앞쪽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쪽의 주조문(朱鳥門)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서문·암문·북문에는 성문의 보호를 위해 옹성(甕城,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성)을 부설하였고, 장대(將臺, 성 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로서 성 밖의 적을 살피거나 전투를 지휘하는 곳), 망루(望樓) 및 15개소의 보루(堡樓)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겨우 남아 있다.

2000년 이후 동래읍성 내 각종 개발행위에 따른 발굴조사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성곽 흔적(조선전기 읍성)과 임진왜란 이후 쌓은 평지 지역의 성곽 흔적, 그리고 조선말기에 수축한 성곽을 확인함 으로써 동래읍성 전체의 정확한 범위, 규모 등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현존하는 성지(城址)를 중심으로 훼손·방치되었거나 남아 있는 성터가 확인되는 곳에 대해서는 발굴조사와 함께 지속적인 보수·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 부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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