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촌두부집
촌두부집
- 홈페이지
http://instagram.com/chontofu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지산로 64
촌두부집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에 있다. 계곡 인근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즈넉한 시골집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생방송 투데이>에 소개되었다. 대표 메뉴는 국산 콩으로 매일 만드는 촌두부다. 이 밖에 수육, 야채전, 칼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국수고기얹어 등도 맛볼 수 있다. 남김천 IC와 성주 IC에서 가깝고 주변에 금오산도립공원과 금오랜드가 있다. 반려동물은 야외 좌석에 한해 동반이 가능하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촌두부
- 문의및안내
0507-1359-7636
- 쉬는날
매주 월요일
- 영업시간
10:00~16:00
- 주차시설
가능
- 취급메뉴
사태수육 / 야채전 / 칼국수 등
◎ 화장실
있음
◎ 주위 관광 정보
⊙ 세종대왕자태실 생명문화공원(태실문화관)
- 홈페이지
https://www.sj.go.k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12
세종대왕자태실이 위치한 생명문화공원 내에는 태실문화관과 함께 인근에는 성주군 대표 불교사찰인 선석사가 도보거리에 위치해 여유로운 산책이 가능하다.
태실문화관에는 생명존중 정신이 깃들어 있는 태실의 고장 성주를 소개하고, 장태의 역사, 조선왕실의 출산의례, 태실의 조성, 태실의 구조 등 태실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생명문화공원은 조선시대 태실 미니어처가 설치되어 공원산책을 즐기며 전국에 산재된 태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태실문화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또한, 입장료 없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 상세 보기 : 바로가기
⊙ 선석사(경북)
- 홈페이지
https://www.sj.go.kr/tour/main.do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16-33 (월항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인 선석사는 성주군 서진산 중턱에 위치했으며 성주군에서는 가장 커다란 사찰이다. 경북 지역의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창건 연대, 창건 인물 등은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단지 692년(효소왕 1) 의상대사가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창건 당시는 지금보다 서쪽이었고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려 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와 지금의 선석사라 명하였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84년(숙종 10) 혜묵, 나헌 스님 등이 중창하고 1725년(영조 1) 서쪽의 옛터로 옮겼다가 1804년(순조 4) 서윤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어필각, 정법료를 지었으나 그 뒤 화재로 어필각은 소실되었고 최근 대웅전 뒤 대나무 숲 아래 야외 미륵부처님을 조성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절에서 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이 있으며 이는 태실 수호 도량으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 받기도 하고 왕조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태실의 변화를 지켜보아야 했다. 숱한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하여온 선석사는 이제 성주 고장 사람들을 위한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봄마다 아름다운 도량에서 열리는 산사 음악회를 비롯해서 문화 공간, 수행 공간, 교육 공간으로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 홈페이지
http://www.sj.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태실로 639-18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이다. 태는 태아의 생명력으로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었다. 왕실에서는 전국의 명당에 태 항아리를 안치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성주의 세종대왕자태실은 규모나 가치면에서 으뜸이며 지금은 생명문화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禪石山, 742.4m] 아래의 태봉[胎峰]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9왕자 중 큰 아들인 문종[文宗]을 제외한 18왕자의 태실과 원손[元孫]인 단종[端宗]의 태실 등 모두 19기가 있으며, 이곳은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은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출처 : 성주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 새불고기식당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고로 22
새불고기식당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대장리에 있다. 1988년에 문을 열었으며, KBS 1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 소개되었다. 건물은 지붕에 기와를 얹은 한옥식이다. 대표 메뉴는 한우특수부위이며, 한우갈빗살, 한우꽃등심, 한우불고기, 한우육회 등을 맛볼 수 있다. 성주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삼산산림욕장과 독용산성자연휴양림이 있다.
⊙ 덕암서원(성주)
- 홈페이지
https://www.sj.go.kr/tour/main.do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3길 29-72
이 서원은 경산이씨(京山李氏)의 3현(賢)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학가재(學稼齋) 이주(李)를 존모(尊慕)하여 현종 13년(1672)에 사림에서 덕암사(德巖祠)를 건립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고종 13년(1876)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서원 명칭은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廟宇),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여 이듬해에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제향 된 이천배와 이천봉은 형제 사이로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천봉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백인당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동규(洞規)·향약(鄕約)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배치구성은 토석담을 두른 장방형 곽 전면에 서원을 출입하는 대문에 해당하는 솟을삼문인 건명문(建明門)이 있고, 북쪽에 강당과 그 앞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는 별도의 곽 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에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통 칸 온돌방,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에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사당(祠堂)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되어 있다.
(출처: 성주군 문화관광)
⊙ 암포서원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길 89 (월항면)
암포서원은 본래 선조를 제사하기 위한 사당과 교육을 겸한 서당으로 출발하였으나, 1569년 (선조 2) 국학의 제도에 따라 선현을 제사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건물의 중건과 함께 그 명칭을 서원으로 변경하였다. 1871년(고종 8) 음력 3월 20일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사액서원 47개소만 남기고 통폐합할 때 훼철되었다. 1960년 5월 29일 정면 4칸, 측면 2칸의 한옥으로 복원하였으며, 복원된 건물이 퇴락하여 사당은 문화재적 가치 보존을 위해 존치하기로 했다. 그 외 건물은 경내에 이전 중건하였으며, 2007년 5월 13일 성주향교 유림 및 각 문중 대표 주관으로 낙성고유식을 거행하였다. 건물의 공간적인 구성은 풍수지리학적 지형·지세에 따라 서원의 우측으로 사당을 배치하였으며, 서원ㆍ사당ㆍ단목ㆍ단정 등이 있다.
- 상세 보기 : 바로가기
⊙ 성주 백세각
- 홈페이지
https://sj.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27-3
성주 백세각은 조선 전기 사헌부 집의 등을 지냈던 송희규(1494~1558)가 1551년(명종 6)에 짓기 시작하여 다음 해에 완공한 건물이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건물은 백세각과 사당, 관리사, 화장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세각의 평면은 ㅁ자 모양이며,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것과 대패를 쓰지 않고 손도끼(자귀)로만 다듬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백세각은 독립운동과도 관련이 깊은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로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의 의논 장소로 사용되었다. 또한 유학자인 공산 송준필은 이곳에서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을 작성하고, 제자들과 함께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 만세 시위에 나누어 줄 태극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5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