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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주시] 석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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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거돈


- 석거돈
054-746-6308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산업로 2838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낙지전문점 석거돈]
외동읍에 있는 석거돈은 낙지전문점이다. 석거돈은 낙지+돼지고기를 뜻하며, 이곳의 메뉴는 석거돈과 낙지볶음 두가지 메뉴를 제공한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석거돈

- 문의및안내
054-746-6308

- 쉬는날
매주 금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0:00~16:00 (라스트오더 15:30)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취급메뉴
석거돈 / 낙지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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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영지석불좌상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영지로 622-6

영지석불좌상은 광배와 대좌를 완전히 갖추었지만 각 부분에 손상이 상당히 있다. 얼굴은 알맞은 크기로 조각되었으나 파손이 심해서 눈, 코, 입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건장한 신체와 허리, 양감있는 무릎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석불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석불상이라 하겠다. 특히 오른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불의(佛衣),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 등 석굴암본존불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귀중한 불상의 하나이다. 부처님이 앉은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 3개를 다른 돌로 조각하였다. 상대에 2중 또는 3중으로 된 연꽃을 아래위 2단으로 어긋나게 조각하였고, 중대는 조금 좁게 팔각형으로 조성하여 안상(眼象)을 조각하였으며, 하대는 역시 연꽃 24송이를 조각하여 전체를 장식하였다. 불신(佛身)과 일석(一石)인 광배에는 번잡한 불꽃무늬 안에 화불(化佛)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어 당시의 대좌와 광배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불상은 불국사 석가탑(釋迦塔, 일명 無影塔)에 얽힌 전설로 널리 알려진 영지 곁에 있다.
이 전설로 인하여 이 불상은 아사달(阿斯達)이 아사녀(阿斯女)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 경주 원성왕릉


- 홈페이지
경주 문화관광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신계입실길 139

이 능은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785∼798, 김경신)을 모신 곳이다. 경주 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약 12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밑둘레 70m, 지름 21.9m, 높이 7.7m로 능의 둘레에 있는 호석(護石)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돋을새김되어 있고, 그 주위로 돌난간이 에워싸고 있다. 봉분에서 약간 떨어져 좌우에 화표석·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 돌사자(石獅子)를 마주 보게 세웠으며, 무인석은 서역인(西域人)의 얼굴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 무덤은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본받았으나 둘레돌·십이지신상·난간·석물 등 모든 면에서 신라 능묘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조각 수법은 신라 왕릉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괘릉'' 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덤의 구덩이를 팔 때 물이 괴어 널[棺]을 걸어[掛] 묻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 연지암(경주)


-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duswldka123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활성길 120-5

연지암(蓮池庵)은 경주시 외동읍 활성리 378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경주 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뻗은 7번 국도를 타고 가면 경주 괘릉이 나온다. 괘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괘릉은 『우리 문화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씨가 “한 마디로 경주에 있는 1백55개 고분 중 능묘 정원이 가장 아름답고, 그 능묘 조각은 통일신라 리얼리즘 조각의 진수”라고 해서 더욱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무덤 주변의 세워진 석상들 가운데 무인석(武人石)은 신라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서역 사람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 괘릉 안쪽에는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초입에는 오랜 세월 산이 깎여 언덕이 된 자리에 단아한 모습을 한 연지암이 나그네의 발길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연지암 대웅전에는 경상북도문화재자료로 지정이 된 석조 약사여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일제 말엽 이 절의 창건주 김연지화 보살의 꿈에 현몽을 하고 노천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내어 연지암으로 모시고 왔다. 이를 안 일본군이 어디서 훔쳐왔느냐며 연지화 보살을 고문하기 시작했는데, 보살을 고문한 그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약사여래 부처님은 얼마나 영험한지 사업 성취, 학업 성취, 아픈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나 와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약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데 활성리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으며 마을주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마을이다. 추녀 끝으로 산그늘이 젖어들고 마당에는 간간히 멀리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휩쓸고 지나간다. 주지 법진스님이 내주신 따뜻한 차 한 잔의 향기로 긴 여정의 목마름을 달래며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런 박과 때 늦게 핀 하얀 박꽃을 어둠 속에서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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