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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청도군] 시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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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


-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cafe.sicily_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75-2

오래된 주택 1층에 지어진 카페로, 내부로 들어서면 1970~8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테이블과 의자는 긴 세월을 거친 듯한 목재 가구로 되어 있고, 매장 한 켠에는 레트로한 콘셉트의 다기 그릇과 유리컵, 다양한 모양의 촛대가 놓여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그니처 메뉴는 에수페너와 라라랜드. 에수페너는 미숫가루(찹쌀, 보리쌀 등의 곡물을 찌거나 볶아서 만든 가루)를 섞은 에스프레소 위에 크림이 얹어진 메뉴이며, 라라랜드는 영화 〈라라랜드〉(2016)를 모티브로 한 레몽 자몽 티로, 음료에 보라색과 노란 빛을 띠고 있어 오묘한 플레이팅을 자랑한다. 이 외에도 차, 에이드, 스무디 등이 준비되어 있고 디저트로는 브라우니와 스콘이 있다. 청도읍성 인근(약 650m)에 자리해 함께 여행하기에도 좋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에수페너, 라라랜드

- 문의및안내
010-2932-2729

- 쉬는날
없음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1:30~22:00(라스트 오더 20:00)

- 주차시설
없음(청도읍성 주차장, 화양읍 사무소 주차장 이용)

- 취급메뉴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바닐라라떼, 에수페너, 라라랜드







시실리 (2)



◎ 주위 관광 정보

⊙ 청도 석빙고


- 홈페이지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119-3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동·서로 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입구는 서쪽에 설치되어 계단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다. 내부의 길이는 14.75m, 폭은 5m이고, 높이는 4.4m로, 그 규모는 경주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얼음 녹은 물이 바닥 중앙의 배수로를 따라 동쪽 끝에 마련된 배수공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게 설계하였고 천장에는 당연히 더운 공기가 나갈 수 있는 환기 공이 설치되었겠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석빙고가 설치된 연대는 입구 좌측에 있는 석비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비 앞면에는 축조에 참여한 인원수, 비용, 소요 재료 등이 기록되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관계인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석빙고는 1713년(숙종 39)에 건립되어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로는 가장 먼저 축조된 것이다.

⊙ 청도읍성


- 홈페이지
http://www.cheongdo.go.kr/open.content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당시의 성은 석축과 토축, 혼합 토성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객관, 유향소, 군기고, 서역소, 작청 등의 건물이 있었다. 선조 23년(1590년)에는 원래 토축성이었던 것을 석축성으로 고쳤으나 임진왜란 때 동, 서, 북문은 소실되었고 성벽이 파괴되었던 것을 후에 성벽의 수축과 문루의 재건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의 읍성철거정책으로 다시 성벽이 헐렸다. 현재는 도시의 확장으로 성벽 일부와 기저만 남아 있다.


⊙ 청도향교


- 홈페이지
http://www.cheongdo.go.kr/open.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제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화양향교(華陽鄕校)라고도 불린다. 1568년(선조 1)에 군수 이선경이 고평동에 세웠다가 1626년(인조 4)에 합천동으로 옮겼으며, 1734년(영조 10)에 화양읍 교촌리로 다시 이전하였다. 대성전과 동·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서재, 사락루(思樂樓) 등 8동의 건물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사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과 강학기능의 명륜당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이곳은 두 건물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며 기둥머리에 물익공을 짜고 장식이 없는 네모판의 화반(花盤) 등 검소한 모습이다. 설총(薛聰), 안유(安裕), 이황(李滉), 이이(李珥), 최치원(崔致遠), 이언적(李彦迪) 등 16명을 배향하고 있다. 명륜당은 이익공계 집이며, 사락루는 2층의 누각 건물로 아래층에 출입문이 나 있다.


⊙ 청도 합천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 홈페이지
http://www.cheongdo.go.kr/open.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합천리 517번지

이 불상은 광배(光背)와 불신(佛身)을 한 돌에 새긴 아미타여래입상으로 오른손은 가슴위에 얹고, 왼손은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 법의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다. 광배 높이가 2m, 불신의 높이가 1.62m, 어깨폭이 54Cm로 조각양식은 통일신라기에 파급되는 당양식이 신라화하는 9C의 불상보습을 반영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 속에 비각도 없이 풍화 마멸되어 가던 것을 지금은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불상은 반양각으로 조각했으며 굵은 돌선(突線)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새겼다. 얼굴은 친근감을 주는 온유한 모습으로서 두툼한 나발(螺髮), 큼직한 육계와 어깨에 닿는 큰 귀로 말미암아 원만감을 더 해주고 있다. 존체는 활짝 드러낸 넓은 가슴에 균형있는 자세로 인해 풍만감을 보여준다. 몸에 밀착된 통견의(通肩衣)와 군의(裙衣)는 간결한 형식의 표현기법이기는 하나 유연감과 유려미를 나타내고 있다.


⊙ 청도글램핑


-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cheongdo_glamping/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남산길 100

청도글램핑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자리 잡았다. 청도군청을 기점으로 3km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청려로와 동천3길을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안팎이다. 캠핑장에는 글램핑 9개 동이 마련돼 있다. 내부에는 침대, TV, 개수대, 취사도구, 조리도구, 테이블, 화장실, 샤워실 등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캠핑장 중앙에는 물놀이장이 있어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기 그만이다. 주변에는 청도읍성과 청도남산계곡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 반려동물 동반 불가

⊙ 청도 남산계곡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화양남산길

우리나라에서 남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산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지만 어느 곳의 남산도 웅장하거나 큰산이 아니고 알맞게 크고 예쁘장한 것이 다소곳이 고개숙인 처녀 모양인데 청도의 남산도 예외는 아니다. 청도의 남산은 해발 829m의 높이로 본군 청도읍, 화양읍, 각남면 3개읍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산으로, 봄이면 상여듬에서 봉수대 사이의 진달래 행렬과 산중턱까지 개간한 복숭아밭의 만개한 도화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절경이며 봉수대에서 정상까지의 바위능선길은 릿지 산행도 맛볼 수 있다. 남산 곳곳에는 명소가 즐비하다. 이서국 패망의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은왕봉과 깍아지른 듯한 높이 30m의 낙대폭포는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하여 약수폭포라고도 한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숲, 맑은물을 자랑하는 남산골 계곡의 여름철은 분주하기 그지없다. 보조국사가 손수 심었다는 수령 900여 년의 은행나무와 적천사, 신둔사, 죽림사 등 신라고찰을 만날 수 있으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화양읍 소재지에 있는 석빙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청도읍성, 향교, 도주관 등 선조들의 얼이 담긴 많은 문화유적을 탐방할 수 있다.


⊙ 청도 범곡리 지석묘군


- 홈페이지
http://www.cheongdo.go.kr/open.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청도천 유역에 정착했던 청동기 시대사람들의 묘로서 그 기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가까이에 큰 취락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서국을 형성했던 기층집단의 총체적인 위세를 나타내는 유적이기도 하다. 이 고인돌의 상석은 제일 큰 것이 305cm×250cm×170cm의 크기로 그리 큰편은 아니다. 이 지석묘군은 당초에는 약 40기에 가까운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34기가 남아있으며 이서국시대 그 이전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조성된 34기의 지석묘가 나열되어 있는데, 북서쪽으로 22기가 동남쪽으로 12기가 80m거리를 두고 대규모로 군집되어 있다. 지석묘의 배치는 하천의 방향과 일치하며 형식도 남방식 또는 개석식이다. 상석의 규보는 장축이 3m이하로 그리 크지 않으며 최대 305×250×170 cm 최소는145×140×70 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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