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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원도 평창군]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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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강로 1423-3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여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하기에 좋은 한식전문점이다. 옹달샘식당의 음식들은 모두 국내산 재료로 만들어진다. 신선한 재료를 섞어 먹는 보리밥이 일품이며 바삭하고 고소한 감자전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보리밥

- 문의및안내
033-332-2885

- 쉬는날
전화문의 요망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0:00 ~ 18:00 (전화문의 요망)

- 주차시설
15대

- 취급메뉴
보리밥





◎ 화장실
있음





옹달샘(2)옹달샘(5)옹달샘(3)옹달샘(4)옹달샘(1)옹달샘(6)



◎ 주위 관광 정보

⊙ 평창문화원


- 홈페이지
http://www.pycc.or.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문화예술길 53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 위치한 평창문화원은 지역 고유문화의 계발, 보존, 연구를 위해 1964년 12월 30일 설립되었다.
평창문화원 내 평창학연구소는 지역의 고유문화 조사, 발굴을 진행하며 이를 전승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문화학교의 경우 지역주민의 문화적 소양 함양을 위해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문화학교 프로그램으로는 한글〮한문 서예, 사군자, 다도, 시 낭송, 오카리나, 민요, 가야금, 수채화, 라틴댄스 등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 외에도 평창문화원은 예술단 〔창〕과 〔평창문화원 합창단〕을 두어 지역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여러행사에 참여해 음악으로 평창을 알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단원으로 이루어진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은 소외 지역에 찾아가 공연을 하고 교류연주회, 정기연주회 등의 각종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 평창 남산 둘레길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문화예술길 19

남산 둘레길은 평창읍을 휘돌아 흐르는 평창강을 따라 조성된 수변데크길을 걸어 마을을 지나 평창강 제방길을 따라 돌아오는 약 7km의 길이다. 아름다운 평창강을 조망할 수 있으며 농촌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로 시내에서 가까워 이용이 편리하고 남산산림욕장과 연결되어 있다.
• 無念無想의 길 (세상의 어지럽고 힘든 일을 접고서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길)
• 冥想의 길 (수려한 강과 산을 조망하며 멀리 보이는 산과 강을 보면서 명상과 기도의 마음으로 세상의 어지러움을 잊을 수 있는 코스)

⊙ 평창향교


- 홈페이지
http://tour.pc.go.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향교길 148 (평창읍)

평창향교는 효종9년(1658)에 세워진 향교로 1985년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창민과 유생들에 의해 세워진 평창향교는 숙종 45년(1719) 영조 5년(1729)에 각각 중수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1953년에 중수하고 1973년에 보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2층 누각인 풍화루와 강학이 이루어지던 명륜당이 있고, 내삼문과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을 모시고 있는 대성전이 있다. 이 외에도 홍살문과 부속건물 3동이 있다. 앞쪽에는 배움의 공간이 있고, 뒤쪽에는 제사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향교의 일반적 배치형태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의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 유동리오층석탑


- 홈페이지
http://tour.pc.go.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강로 1267-4

평창읍 유동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0호 지정되었다. 오층 석탑은 1층 기단 위에 쌓아 올린 5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었는데 상당히 큼직한 기단부와 이 위의 적당히 체감된 옥개석과 탑신이 얇고 평판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단층의 기단 위에 세워진 석탑으로 장대석으로 쌓은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올렸다. 하대석은 1매의 판석으로 윗면에 복련이 각 변에 6판씩 24엽이 새겨진 연화대를 놓고 그 위에 중대석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 우루루동물농장


-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cheongseongaewon/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살구실길 53-10 (후평리,청성애원)

"모두가 행복한 사계절 가족놀이터인 우루루동물농장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식물과 어울러져 생활하는 20여종 200여 마리의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먹이주기 체험과 하절기는 물놀이장, 느린우체통 등 다양한 체험의 공간이다.

1)동물구성
- 미니동물 : 미니돼지, 토끼, 기니피그, 다람쥐, 고슴도치

- 조류 : 공작, 타조, 금/은계, 칠면조, 거위, 병아리,청계 금수남 은수남등 다양한 관상용 닭, 토종닭
- 동물 : 사슴, 양, 염소
- 체험 : 동물먹이주기, 타조알 체험


2)볼거리
- 풍차공원, 느린우체통, 야생화공원, 바람개비 언덕, 자작나무 전망대, 물놀이장."

⊙ 노산성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중앙로 158-8 하리 산1 및 중리 산10 일원

이 산성은 노산성(魯山城)이라 불려지고 있는데, 초축 연대를 알 수 있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성내에서 통일신라기의 유물이 수습된 것을 고려할 때 이미 그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도 다수 수습되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시대까지 계속 개수되면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산성은 평창의 진산(鎭山)인 노산(魯山)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은 평창강이 굴곡하는 곳에 우뚝 솟은 해발 419m의 노산에 쌓았는데,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은 절벽이거나 매우 가파른 곳이어서 천험(天險)의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조선 선조 초에 군수 김광복(金光福)이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권두문(權斗文) 군수가 지사함(智士涵), 우응민(禹應民), 이인노(李仁怒) 등과 함께 백성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적조(古跡條)에는 노산성(魯山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석축주일천삼백육십사척고사척내유일정금반퇴락(石築周一千三百六十四尺高四尺內有一井今半頹落)라고 되어있다.
성의 둘레는 517m이며, 현존성벽의 높이는 1.3m 전후이다. 성벽은 북쪽의 절벽부분을 제외한 곳에만 축조되었는데, 능선의 바로 아래 부분을 삭토(削土)하고그 바깥쪽에 성벽을 구축함으로써 성벽을 따라 편편한 내환도(內環道)를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홍천 대미산성(大彌山城)의 축조법과 같은 방식이다.
노산성은 산복식 산성으로 북쪽이 가장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을 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북벽이 천험의 자연 지형에 축성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 쌓은 총 길이는 약 517m정도이다. 서벽은 약 115m 정도인데 그 중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 8.2m, 높이 5.3m이다. 사용된 돌은 편마암으로 품자 형태로 면석쌓기를 하였다. 사용된 돌의크기는 58(길이)×12(높이), 47×13, 34×14㎝정도이며, 뒷채움은 돌로 채웠다.
서벽 부분의 산 정상에는 성역화 계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형을 많이 훼손하였다. 서벽의 일부도 산 정상에 오르는 시멘트 계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계단을사이에 두고 석축의 기단부 일부가 남아 있는데, 43(길이)×14(높이)×28(깊이)㎝, 34×20×35㎝, 36×13×35㎝ 정도의 돌을 사용하였다. 서벽에서 남벽으로 회절하는 부분에는 치와 망대를 설치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축성 형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남벽의 길이는 약 334m인데 산 사면의 일부를 깎아내어 산성 내에 폭 6m정도의 회곽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편축을 하였는데 높이는 약 2.6m정도 남아 있다. 남벽의 성곽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동벽의 길이는 약 122m이며, 역시회곽도를 만들었다. 동벽도 대부분 붕괴되었다. 성내 시설로는 산 정상 부근에 우물지가 한 곳 있는데 규모가 7.7(동서)×8.5(남북)m이며, 깊이는 약 2m이다.
노산성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토기편과 와편들인데 특히 와편은 읍내에서 산성으로 올라가는 진입로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수습된 토기편은 대체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시대에 걸친 것으로 판단된다.
수습된 기와편들은 모두 조각들이며 완형은 없지만 숫키와편보다 암키와편이 더 많다. 문양은 초문, 격자문, 사선문 등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편들이 다수를 차지하나 수지문과 선문, 무문의 와편들도 끼여 있다.
기와편 측면의 와도흔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 있으나 무문와편 중 1점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나있다. 와편의 문양으로 보아 노성산성은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축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몇 번의 개축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노산성은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축조된 산성으로, 둘레 517m인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있는 상태이나 임진왜란 때 권두문 군수가 백성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유서 깊은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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