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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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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촌


- 촌
02-720-4888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4길 19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 중에 하나인 인사동은 예로부터 한국적인 느낌의 찻집이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구석구석 골목마다 오래된 음식점과 찻집들이 숨어 있어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한 곳이 인사동이다. ''촌''은 이러한 인사동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한국적인 느낌의 인테리어로 방과 다락방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토속적인 주막의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도 그 맛은 여느 한정식당에 못지않게 담백하고 풍성한 맛과 그 정갈한 느낌의 음식을 보고 맛볼 수 있다. 신선한 야채와 회, 보쌈, 대하 등 다양한 요리들로 구성된 북촌정식뿐만 아니라 철판 갈비, 저녁에 술안주로 먹을 수 있는 해물파전이나 철판 낙지볶음 등 다양한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북촌정식

- 문의및안내
02-720-4888

- 쉬는날
매주 일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1:00~21: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문의 (02-720-4888)

- 취급메뉴
북촌정식 / 해물파전 / 철판낙지볶음 / 구절편요리





◎ 화장실
남녀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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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천도교중앙대교당


- 홈페이지
종로구 문화관광 http://tour.jongno.go.kr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우리나라 천도교의 총본산이다. 천도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시된 동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3대 교주 손병희는 1904년 이용구가 일진회와 합하여 친일 행위를 자행하자, 이와 구별하기 위해 천도교로 1905년 개칭하였다. 개칭한 이후, 1906년 1월 『천도교 대헌』을 반포하고 교단을 새롭게 조직하였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하였으며, 3·1운동 당시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던 천도교는 광복 이후 북한 지역 교세의 급격한 증가에 힘입어 크게 확장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다시 쇠퇴하였다. 1953년에 중앙 총부를 서울로 옮겼으며, 1961년에는 최시형과 손병희의 법설(法說)이 포함된 『천도교 경전』을 간행하였다. 중앙대 교당은 천도교의 종교 의식 및 각종 정치집회, 예술 공연 등의 일반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붉은 벽돌로 고풍스럽게 지어진 4층 건물이다. 제3대 교주인 손병희에 의해 건축하기로 결정하여 교인들의 성금으로 건립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일본인 중촌여자평(中村與資平)이 했으며, 중국인 장시영(張時英)이 시공하고, 일본인 기사 고곡호시(古谷虎市)가 총감독을 맡아 완공하였다. 기초부는 화강석으로 벽체는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지붕 옆면이 사람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인데, 철근 앵글로 중간에 기둥이 없게 하였다. 또한, 앞면에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풍으로 하여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으며, 교회당의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총 건평은 927.87m²(280.68평)으로 약 800명에서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중앙대교당 옆으로는 현재 천도교의 사무실이 있는 수운회관이 있다.

⊙ 경운동민병옥가옥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3-9 (경운동)

193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개량한옥으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건축가 박길용(1898∼1943)이 설계했다고 전한다. 경운동 66-8번지에 있던 정순주 가옥과 같은 평면으로 정순주 가옥은 이 집의 뒷채에 해당한다. 원래 건축주가 두 아들에게 한 채씩 주기 위하여 지은 집이라고 한다. 네모반듯한 집터 동쪽에 대문이 있고, 앞마당으로 들어가면 남향으로 H자형의 건물이 있다. 중심축에 부엌·대청·건넌방·사랑방이 있고, 부엌의 앞쪽으로 안방, 뒤쪽으로 뒷방이 있다. 반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어 동선을 연결하였다. 사랑방의 앞쪽에는 누마루를, 뒷쪽에는 현관마루를 두었다. 건넌방은 상당히 큰 방으로 꾸며 사랑방 구실을 하고, 현관마루와 연결되는 사랑방은 응접실 용도로 사용하도록 설계한 듯하다. 마당 남쪽 담장 밑에는 작은 화단을 가꾸어 놓았다.현관과 화장실·목욕탕을 내부에 두고 이들을 연결하는 긴 복도를 둔 점과 유리창을 단 점 등은 이 시기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주택의 변천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문화재청


⊙ 경인미술관


- 홈페이지
경인미술관 http://www.kyunginart.co.kr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1-4 (관훈동)

1983년 12월 6일 개관한 경인미술관은 서울의 한가운데 종로구 관훈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예술인의 문화 공간으로서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총 약 500평(1650㎡)의 대지 위에 제 1, 2, 3, 5전시실과 아틀리에, 야외 전시장,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야외 무대와 스크린, 전통 찻집(다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 장소이자 미술인들의 전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고 또 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서도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한편 야외무대를 비롯하여 정원들 사이 사이에 위치한 조각, 입체 및 설치 작품들로 인해 경인미술관은 어느 한 부분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봄, 가을에는 야외 콘서트가 열리고 작가와 관객의 만남인 시연회가 이루어질 때도 있다. 미술관이란 어느 특정인의 장소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경인미술관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 경인미술관의 역사지방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던 한옥전시실은 조선조 철종의 숙의범씨(淑儀范氏) 소생 영혜옹주(永惠翁主)의 부마이자 태극기를 만든사람으로 유명한 박영효(朴泳孝)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속칭 서울의 8대가 중 하나로 이름난 곳이었으나 현재는 남산골 한옥촌으로 미술관에서 기증·이전하여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조선시대 양반가의 건축양식을 둘러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쌈지길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4

골목마다 이야기를 담고있는 정감 있는 서울의 인사동에 약 500m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2004년 12월 18일 문을 연 <쌈지길>은 공예품전문 쇼핑몰로서 “인사동 속의 새로운 인사동”으로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한국의 인간문화재가 만든 최고급의 전통공예품과 현대공예작품, 그리고 한국의 멋이 풍기는 디자인 제품들을 쌈지길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한국 음식인 ‘전주비빔밥’, ‘불고기’, ‘빈대떡’과 한국의 전통차도 맛볼 수 있다.


⊙ 모인화랑


- 홈페이지
http://www.moingallery.co.kr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3 (관훈동) 청아빌딩 2층

모인화랑은 인사동 중심가에 자리한 현대미술 위주의 기획ㆍ초대 전문화랑이다. 1988년에 개관한 이후,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인의 안목으로 대가 및 청년 작가의 작품을 다양한 정보를 통해 미술 작품의 소통의 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중ㆍ대형의 건물 사무실의 Art Consulting도 활발히 하고 있는 화랑이다.

⊙ 가람화랑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garamgallery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11

가람화랑은 근대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시작으로 개관하였다. 전문미술인이 경영하는 화랑으로서 형상미술을 위주로 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획전과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근.현대미술의 수준높은 주요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구상성 짙은 작품들을 용이하게 관람할 수 있다. 인사동이라는 대중과의 원활한 접촉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초보 컬렉터들도 작품감상 및 작품 컬렉션에 관한 자문을 구할 수 있다. 대표작가로는 민정기, 한애규, 박고석, 김창세, 장영숙, 이철주, 송창, 이희중 등의 중견 작가들이 있다.

일반 대중이 쉽게 미술과 문화에 접근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람화랑은 직장인들과 중산층 컬렉터들이 가장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평범함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가들과 중진들의 작품을 접해 본 경험이 많이 있는 초보 컬렉터들의 길잡이로서도 더할 나위없다. 안창, 민정기, 이철주 등 3대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또한 눈과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편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 갤러리 미즈


- 홈페이지
http://www.mizgallery.com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1

1982년도에 개관한 갤러리 미즈는 기획전, 초대전을 비롯 한국미술의 발전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작가 발굴을 위한 일련의 MIZ Artists 프로그램은 젊은작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그동안 이 제도를 통해 작가 김지현 등 20여 명이 배출되어 한국화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 노화랑


- 홈페이지
노화랑 http://www.rhogallery.com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4

노화랑은 1977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송원화랑'으로 개관했다. 1996년 현 위치인 종로구 관훈동으로 이전하면서 화랑 이름을 노화랑으로 바꾸었으며, 개관을 기념하여 미술로 본 20세기 한국인물전을 개최하였다. 이후 1997년 백자전을 통해서 한국의 전통 미의 정수를 확인하였으며, 이강소, 윤형근, 송수남전 등을 기획 및 전시하여 한국 현대 미술의 역량을 제시하였다. 또 전통 회화의 거장인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을 비롯하여 '박수근', '이중섭', '도상봉', '오지호', '장욱진' 등의 기획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에는 FIAC에 참가하면서 국제 미술시장에도 진출하였다.


⊙ 다보성 갤러리


- 홈페이지
http://daboseong.com/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경운동)

다보성 갤러리는 1983년에 문을 연 이래 수준 높은 다수의 고미술품과 귀중한 사료(史料)를 수집(蒐集)하여 국립 박물관을 비롯하여 시립, 공립, 각 대학 박물관, 사립박물관 등에 공급시키는 일에 힘 써왔다. 그 가운데는 하마터면 외국으로 흘러 나갈 뻔했던 최상급 문화재도 있었고, 일본 등지로 팔려가는 귀중한 북한 문화재들을 치열한 경쟁 끝에 국내로 들여오기도 하여, 나름대로 우리 문화유산 지킴이 역할을 하여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골동(骨董)이라고 하면 무조건 가격이 높은 것, 서민들은 만져볼 수도 없는 특수 계층의 취향과 소유의 대상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관행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골동은 저가(低價)여도
좋고, 누구나 지니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손때묻은 작은 유물들이 더 정답게 느껴지고 더욱 값어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보성고미술관은 이러한 소품(小品)들을 모아 매년 전시를 하여 왔다. 지필묵연(紙筆墨硯)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비롯하여 개구리 모양의 작은 연적(硯滴), 예전에 여성들이 애완하였던 작은 화장품합(化粧品盒), 그리고 원앙의 모양을 조각한 향로뚜껑, 신라시대 토우(土偶)와 조선시대 백자인형들, 화조(花鳥)를 화사하게 수놓은 수병풍(屛風) 가래개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전시된다.


⊙ 독립선언문 배부 터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경운동)

서울 종로구에 있는 운현궁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독립선언문 배부 터’라고 적힌 작은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하고 배부했던 위치다. 지금도 표지석 앞에 민족대표 33인과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이름을 기록한 돌이 자리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3.1 독립선언문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인쇄소에서 찍어낸 후 신축 중이던 천도교 대교당 마당(현재의 배부 터 바로 옆)에 갈무리해 두었다가 종교계, 학생 대표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는 길옆에 자리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1919년 봄의 자긍심을 느끼고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장소라 하겠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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