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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경상남도 진주시] 천황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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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식당


- 천황식당
055-741-2646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로207번길 3

진주 시내 중앙시장 안의 사거리에 위치한 천황식당은 1927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영업을 하고 있다. 재래시장 안에 위치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편리하지만 가게 앞 주차는 조금 까다롭다. 그래서 외부에 별도의 전용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 구조는 100여 평의 목조 와가에 널따랗게 장독대들이 늘어져있어 향토전통음식점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업소의 주메뉴는 3가지 반찬과 선짓국이 곁들여져 나오는 진주의 대표적인 음식 전통 진주비빔밥과 숯불에서 갓 구워낸 석쇠불고기이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육회비빔밥 / 석쇠불고기

- 개업일
1927년

- 문의및안내
055-741-2646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06:00~21:00
라스트오더 20: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가능 (055-741-2646)

- 주차시설
주차 가능(20대)

- 취급메뉴
육회비빔밥 / 석쇠불고기 / 육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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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연화사(진주)


- 홈페이지
https://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42번길 13

경남 진주시 옥봉북동 449번지에 위치한 연화사는 수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12교구 본사 합천 해인사의 포교당이다.보살들의 수행정진 도량으로 유명한 이곳은 초창기부터 여러 큰스님들이 주석하며 이어온 수행가풍으로 항상 30명 정도의 보살들이 정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정도가 하도 깊어 스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연화사 도량에 가면 부도가 2기 있는데 스님의 것이 아닌 보살의 부도이다. 이 부도는 이곳에서 공부한 보살들이 입적하면서 남긴 정진의 결과물인데 공부의 깊이가 상당했을 뿐 아니라 불자들의 귀감이 되어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송성덕화라는 보살의 다비식 후 사리 7과가 나왔는데 이 사리가 방광을 하여 진주소방서에서 불이 난 줄 알고 출동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진주향교


- 홈페이지
http://www.jinjuhg.kr/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 99-3 (옥봉동)

고려 말 조선 초 경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8년(태조 7)에 중건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목사 김홍(金泓)이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수하고 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풍화루(風化樓)를 신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대성전을 중건하였고, 1644년(인조 22)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명륜당, 동·서재를 중건하였다. 1811년(순조 11)과 1907년에 중수하였고 1979년 동·서재를 중건하였으며, 1984년에 명륜당과 1985년에 풍화루를 각각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 전적은 대부분 산실되었고 ≪진주향교유계안 晉州鄕校儒稧案≫ 등 몇 권의 책만이 남아 있다. 하계방학 때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 청계서원(진주)


- 홈페이지
http://www.jinju.go.kr/tour.web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청계서원은 1833년(순조 33)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殷烈公) 정신열(鄭臣烈)과, 고려 말 물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木棉, 목화) 옷을 입게 한 문충공(文忠公) 정천익(鄭天益)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두 분은 각각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1961년 후손들이 이곳에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 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 청계서원으로 복원되어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 의기사와 의암


- 홈페이지
http://www.jinju.go.kr/02232/02818/02237.web?amode=view&idx=605&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이곳은 제2차 진주성 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적인 진주성내에 있으며 경남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계사년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이 자리에서 왜장을 강가 바위까지 유인하여 껴안고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 바위가 바로 의암이다. 논개사당은 조선 영조 16년(1740)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건립했는데 1960년 의기창열회에서 재건하였다. 김은호 화백이 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목조 기와집이고 지수문이라는 정문을 갖추고 있다. 논개사당에는 다산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매천 황현의 시판과 기생 산홍(山紅)의 시판이 걸려 있어 한층 뜻이 깊다. 매년 제향과 별제를 드린다.


⊙ 촉석루


- 홈페이지
http://www.jinju.go.kr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되었다. 6.25 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는데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개최되어 독특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 진주성


- 홈페이지
http://www.jinju.go.kr/tour.web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임란 때 논개의 순국, 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 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 명이 왜군 10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 의기사(義妓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 의곡사(진주)


- 홈페이지
http://cafe.daum.net/uigoksa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의곡길 72

의곡사(義谷寺)는 경상남도 진주시 비봉산(飛鳳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다. 의곡사는 신라시대인 665년(문무왕 5) 혜통(惠通) 조사가 창건하였다. 그 뒤 통일신라와 고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법등을 이어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이 절에서 승병들을 양성하여 왜적과 싸웠으며, 진주성(晉州성)이 함락된 뒤에도 계속 승병들이 모여 들어 이 절을 중심으로 항전하였다. 그로 인해 나라에서 의승병들의 항전을 기리는 뜻에서 당시에 쓰이던 사명인 근정가를 "의로운 골짜기에 있는 절" 이라 뜻의 의곡사라는 이름을 내려 쓰이도록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성간(性侃) 스님이 관청의 도움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후기에도 몇 차례 중건과 중수가 이루어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 남가람공원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로 320

진주 남가람공원은 남강 바로 옆 대나무 숲길 쪽에 자리하고 있다. 남강 쪽은 자전거길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남가람공원에는 자전거 보관소는 있지만 전용 주차장이 따로 없다. 3월에 방문하면 벚꽃과 산책길 곳곳에 핀 다양한 꽃들을 구경할 수 있다. 공원 끝 쪽에는 화장실과 매점이 있고, 물놀이 분수대가 있어 여름에는 이곳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남가람공원에는 울창한 대나무숲이 있는 남가람 별빛 길이 있는데 꼭 한번 둘러봐야 한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대나무 숲길은 밤이 되면 숲길에 조명이 켜져 더욱 빛을 발한다. 또 공원 곳곳에 의자와 정자가 있어 편히 쉬어갈 수 있다. 특히 진주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남가람공원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 근처 경남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국립진주 박물관도 가까이 있어 함께 방문하기 좋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목줄 착용 및 배변도구 지참)

⊙ 남가람별빛길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로 320 (망경동)

남가람 별빛길은 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진주성 맞은편에 자리한다. 남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대나무 숲이 일 년 내내 싱그러운 초록빛을 뽐낸다. 산책로도 잘 다듬어져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걷기 좋다. 한여름에는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대나무 숲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처럼 낮에는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주던 대숲이 밤이면 환상적인 은하수를 선물한다. 대나무 잎에 빨강 파랑 초록의 작은 전구를 달아 마치 별빛처럼 반짝이는 하늘을 연출한다. 대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진주성의 아름다운 야경이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책로에는 달처럼 동그란 조명이 길을 밝혀준다. 해가 진 직후에 찾으면 보랏빛 하늘과 함께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 국립진주박물관


- 홈페이지
http://jinju.museum.go.kr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11월 2일 '가야문화연구의 중심기관'을 표방하며 문을 열었다. 1998년에는 임진왜란 전문 기관으로서 특성화하였고 2008년, 2018년 두 번에 걸친 전시개편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재단장했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박물관으로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동아시아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연구∙전시하고 있는 한편 박물관 교육,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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