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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버치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식송1로 19 (별내동)
카페 버치는 별내동에 있는 브런치 카페이다. 세련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다. 통창의 유리로 되어 있으며, 자리마다 아크릴 칸막이를 설치했다. 영업시간은 10시 30분~22시이며, 브런치는 오후 8시 마감된다. 매일 3시 30분~4시 30분은 브레이크타임이 있다. 음료는 가능하다. 불암산 방향 마을 입구에 버치 전용 주차장이 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버치타 플레이트
- 문의및안내
031-572-8112
- 쉬는날
없음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매일 10:30 - 22:00 브런치는 오후 8시 마감
매일 15:30 - 16:30 재료 준비시간으로 음료만 먼저 준비
- 주차시설
있음
- 취급메뉴
살사 프렌치 오믈렛, 연.오.몽 버치위치 등
◎ 주위 관광 정보
⊙ 석천암(남양주)
- 홈페이지
https://www.nyj.go.kr/culture/223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75
* 커다란 암벽에 새겨진 미륵불이 장관인, 석천암 *
석천암(石泉庵)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 97번지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때 지증 국사가 장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82년(고종 19)에 병역 제도의 개편으로 오위 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五衛將) 이 장군(將軍)이 옛 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199년에 거사(居士) 김한구(漢九)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昶根) 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석천암의 중심 커다란 암벽에는 중생 구제의 염원을 가지신 미륵불이 몸을 나 투고 계신다. 말법시대 중생들의 귀의처인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스님이 조성하신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 석천암을 전하는 이야기 *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주군 불우(佛宇) 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하고 있다. “천불산(千佛山) 높푸르러 겹쳐졌는데, 발자국 미끄러워 칡을 잡는다. 구름이 노목을 덮어 매 집이 높고, 물이 샘에 흘러와 용이 숨었다. 손님은 시를 쓰려 석탑(石塔)을 쓸고, 스님은 예불(佛) 하며 종을 울린다. 올라가 임해 보니 동남쪽이 모두 보인다. 건곤(乾坤)을 굽어보니 가슴 시원하네.” 이 시는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석천암의 경치가 잘 담겨있다. 지금도 석천암은 가파른 길과 암벽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시구(詩句)에서처럼 사찰에 가까워질수록 아래를 돌아다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산을 오르는 동안의 힘겨움은 어느 순간에 봄에 눈이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들도 이곳을 찾아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시를 읊은 것 같다.
⊙ 산들소리
- 홈페이지
http://www.sandulsori.co.kr
https://www.instagram.com/arboretum_sandul/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59번길 48-31
산들소리는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4만2천평의 부지를 23년 동안 무농약으로 조성한 청정하고 깨끗한 힐링 공간이자 베이커리, 디저트와 음료를 판매하는 제빵소·카페이다. 1,2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료와 베이커리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쉼터가 되고 있다. 서울 근교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각광 받고 있으며 겨울에는 '눈 오는밤 LOVE STORY'를 주제로한 별내림 눈내림 불빛축제를 관람할 수 있다.
⊙ 불암사(남양주)
- 홈페이지
https://www.nyj.go.kr/culture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
* 인쇄용 목판으로 유명한, 불암사 *
불암사(佛巖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 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주군 불우(佛宇)조에 보면 불암사 주변의 경치를 읊은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하고 있다.“우리 집 서쪽 영(嶺)에 절이 있는데, 여러 벗들과 손잡고 함께 놀았다. 달 숲에 송뢰(松瀨)소리, 두릉(杜陵)이 묵었고[宿], 늙은 나무 굽은 바위 이백(李白)이 썼다. 객자(客子)가 안 오니 원숭이 서럽고, 노승(老僧)이 잠들려니 산새가 운다. 아득한 띠끌 세상 어느 곳인가. 흰 구름 땅에 가득, 길을 몰라라.”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시(詩)이지만 옮겨 적어 몇 백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불암사 주변과 비교를 해 본다. 그리고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의 지세가 많이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곳은 이름모를 옛 사람이 시로 전한 전경이 가득하다. 같은 불암산에 자리한 석천암이나 천보사는 하늘을 찌를 듯, 대지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뒤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불암사는 바위의 웅장함이나 시원한 전경이 있지는 않다. 다만 울창한 숲 사이로 노승의 풍모(風貌)를 닮은 굽은 소나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을 이고 부처님을 가슴에 품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러한 불암사는 조선 세조 때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원찰(願刹)을 정할 때 서 진관(진관사), 남 삼막(삼막사), 북 승가(승가사)와 함께 동 불암(불암사)으로 꼽혔던 곳이다. 그만큼 불암사가 호국안민(護國安民)의 기도도량으로서의 사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 불교 경전 인쇄용 목판, 불암사 경판 *
불암사의 자랑거리로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에 있다.이 책판(冊板)은 1631년(인조 9)에 정두경(鄭斗卿)이 명(明)나라에 사절로 갔다가 귀국할 때 얻어 온 책을 바탕으로 하여 1673년에 승려 지십(智什)이 불암사(佛巖寺)에서 다시 간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이 책판은 중국의 책 목록에도 나와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전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산 아래 자리하여 이름마저 '부처바위(佛巖)'라고 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까지 모셔놓은 불암사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도량이다. 이러한 도량에서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음을 들으며, 기도를 통해 매일 정진하고 있다.
⊙ 천보사(경기)
- 홈페이지
https://www.nyj.go.kr/culture/223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45 불암산천보사
* 자연적으로 보살의 모습이 보이는, 천보산 *
불암동 입구에서 불암산을 바라다보면 서쪽 편 정상부가 커다란 암벽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송낙을 쓴 부처님 같은 이 바위산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보궁이 있어 대자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 예로부터 기도 영험이 많은 사찰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 천보사 천연 보궁(天然寶宮)도 그와 같다. 현재 천보산 뒤 병풍을 두른 듯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바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게 여래좌 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천보사가 천연 보궁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보는 위치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천보사 뒤 커다란 암벽은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다. 매끄럽게 내려오는 암벽의 굴곡은 언뜻 보기에 세 분의 부처님이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산삼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동자가 서 있는 듯하다. 또한 다른 면에는 보살의 옆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불, 보살의 모습이 이루어진 곳은 그리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천보사를 천연 보궁이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여 감응(感應)을 받았다고 한다.
* 천보사의 역사 *
천보사의 창건과 연혁은 오랜 세월 속에 묻혀버려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사찰에 세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즉 세조(世祖)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가 불암산의 수려한 모습에 감동하여 ‘천보산(天寶山)’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그때 천보산 중턱에 천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문종실록(文宗實錄)』의 문종 1년(1451) 3월 병진일(丙辰日)에 의정부(議政府)가 원유(園?:왕실의 사냥터)의 혁파를 건의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는데 그 상소문 안에 “천보사 인근의 산들”이라고 천보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1451년 당시까지도 천보사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천보사에 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현재 사찰에 전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오층 석탑인데, 그 조성연대가 조선 말기의 양식을 띠고 있다. 이로 보아 조선 말기에 중창이 있은 듯하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천보사는 다시금 폐허가 되었다. 그러던 것을 해방 직후에 동훈 스님이 새로이 중창을 하여 현재의 천보사로 기틀을 마련하였다. 근래에는 지한(志閑) 스님이 2002년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2005년에는 불교대학을 개설하여 신도교육과 가람 중흥에 매진하고 있다.
⊙ 별내체육공원
-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49 (별내동)
별내체육공원은 별내동에 자리하고 있다. 부속 시설들이 여러 개 있어 이용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부속 시설로는 별내체육공원 물놀이장, 축구장, 테니스장, 산책로, 농구장, 배구장, 배드민턴장, 인공암장, 휴게 쉼터, 광장 등이 있어 주민 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있다.
운동 시설이 많고 덕송천이 바로 옆에 있어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다.
⊙ 학도암(서울)
- 홈페이지
https://hakdoam.modoo.at/
- 주소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서울 근교에 자리한 사찰 가운데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사찰은 아마도 학도암 뿐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의 경치가 학이 와서 놀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는 의미이다.지금도 학도암 주변은 이름에 걸맞게 경치가 좋다. 한여름에는 푸른 숲과 어울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 속에서 천진한 어린이들이 뛰어논다. 겨울이면 나뭇가지 위로 눈이 덮여 설국이 연출되기도 한다. 산중에 자리한 사찰치고 그러한 풍경을 가지지 않은 곳이 어디있겠냐 싶지만 학도암은 불암산의 감추어진 비경이 아닐 수 없다.
학도암의 상징은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높이 13.4m 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는 것으로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굽어 살피고 있어 학도암 뿐만 아니라 노원구의 명물이기도 하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관음보살을 새긴 것은 많지가 않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중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가장 크고 선명하게 남아있어 중요한 문화재로 여기고 있다.이처럼 학도암은 학이 날아와 놀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주변에 두고 전국에서 가장 큰 마애관음보살상 아래에서 향화(香花)를 올리고 있는 소중한 도량이다.
* 창건배경 및 역사
학도암은 1624년(인조 2) 무공화상(無空和尙)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정을 적은 기록이 없어 옛 암자라고 한 것이 어디에 있었으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27년 편찬된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학도암(鶴到庵)」조에 의하면 창건이후 250여년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있고, 1878년(고종 15)에 가서야 벽운화상(碧雲和尙)이 재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학도암 주차장 아래 자연암벽에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어 있는 2기의 부도가 있어 1878년 벽운화상이 재창한 이전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부도는 왼쪽부터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다. 이 가운데“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은“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이라는 명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도 19세기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또한 사찰의 뒤쪽 암벽에 선각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을 1870년(고종 7)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이로 볼 때 1819년 무렵과 1870년 무렵에도 사찰은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1875년에 이르러 벽운화상이 중창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에는 1878년 한씨(韓氏) 일가의 시주로 마애관음좌상을 보수하였고, 다시 1885년(고종 22) 벽운화상이 화승(畵僧) 경선화상(慶船和尙)을 불러와 불상 1구를 개금하고 불화 6점을 그려 봉안하였다. 이 시기 불사에 관한 내용은 〈천보산학도암개금탱화시주록기(天寶山鶴到庵改金幀畵施主錄記)〉로 기록되어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에 전하고 있다.
1922년에는 성담(聖曇)화상이 주지로 머물며 개인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山林)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찰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그 후 1966년에 이르러 김명호 주지가 퇴락한 법당을 중건하였으며, 1970년에 영산회상도를 봉안하였다. 1972년에는 삼성각에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2000년에는 한사람이 겨우 출입할 수 있을 정도였던 자연 동굴을 넓혀 안에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일광보살좌상, 월광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약사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무이(無二) 주지스님이 법당 오른쪽 공터에 430cm 높이의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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