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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전통묵집
- 순흥전통묵집
054-634-4614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순흥로39번길 21
영주 부석사 근처 마을인 순흥에는 1970년대부터 전통 묵밥 한 가지만 만들어온 순흥전통묵집이 있다.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방법으로 메밀묵을 제조하며, 전통묵밥 단일 메뉴만을 판매하는 곳이다. 전통묵밥과 함께 제공되는 갖가지 반찬과 김치 또한 정갈하고 깔끔한 맛으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전통묵밥
- 문의및안내
054-634-4614
- 쉬는날
명절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09:30~19:3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문의 (054-634-4614)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취급메뉴
전통묵밥
◎ 주위 관광 정보
⊙ 영주 순흥 벽화 고분
- 홈페이지
http://www.yeongju.go.k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547-16
1985년 1월 문화재관리국과 대구대학교가 함께 발굴 조사한 이 벽화 고분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학술적, 문화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고분의 현실(玄室)남쪽 벽에 쓰인 기미중묘상인명(己未中墓像人名)이란 글씨를 통하여 대략 539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부구조는 연도가 마련된 석실분(石室墳)으로서 연도를 통해 들어가면 시신을 모신 현실이 있고, 이 현실의 동쪽으로 관을 올려놓았던 관대(棺臺)가 비교적 높게 마련되어 있으며, 아울러 규모가 작은 보조관대도 현실의 서북 모서리에 마련되어 있었다.
현실의 크기는 동서 약 3.5m, 남북 약 2m로 네 벽은 위로 갈수록 약간씩 각을 줄여쌓고 천장은 두 장의 판판하고 큰 돌을 올려 완성하였다. 벽화는 천장을 제외한 내부의 모든 벽면과 관대의 측면까지 채색화(彩色畵)를 그렸고, 특히, 연도의 좌우 벽에 힘이 센 장사상(壯士像)을 그렸다. 특히, 연도 서쪽벽의 뱀을 손에 감고 있는 장사상은 이 무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이 고분은 벽화나 구조로 보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고대신라의 고분벽화로 추정되어지며, 이 고분에 있는 벽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삼국시대 회화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 내세관, 그리고 고구려와의 문화교섭 등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5세기까지 고구려의 영향력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이 지역에 침투했음을 잘 알려주는 유적으로, 현재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 영주 순흥 어숙묘
- 홈페이지
http://www.yeongju.go.k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순흥 어숙묘는 사적으로 1971년에 세상에 알려진 벽화고분이다. 신라 시대 고분으로서 벽화가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발굴 당시부터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 고분은 우리나라 고미술의 권위자인 진홍섭 교수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내부의 부장품은 일본인에 의해 모두 도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벽화의 각면(刻面)만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고분은 튼튼한 거석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입구와 석문, 사면으로 된 석실과 천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화는 원래 석실의 전면에 그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퇴락하고 천정의 연꽃 석문의 인물상이 남아있다. 석문에는 [을유년어숙지술간(乙卯年於宿知術干)]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고분이 신라 시대에 조성되었으며 고분의 주인공이 신라의 관리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벽화를 살펴 보면 천정 연화는 7장의 연잎이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꽃잎의 조각수법, 갈색옷을 입은 신장도의 화법 등 벽화에는 고구려 고분의 성격이 짙게 배여 있는데 그 이유는 순흥이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인 소백산 죽령에 위치한 국경 지대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홈페이지
http://www.yeongju.go.kr/open_content/sosuseowon/index.do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백두대간의 정기를 머금은 소백산자락 영귀봉(靈龜峰)아래 위치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주세붕(周世鵬)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평소 고려말 유현(儒賢)인 안향(安珦)을 흠모하던 주세붕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542년(중종37), 안향선생의 고향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 하고 다음해 1543년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사원(祠院)의 체제를 갖춘 것이 백운동서원의 시초이다.
⊙ 소수박물관
- 홈페이지
소수서원 http://www.yeongju.go.kr/open_content/sosuseowon/page.do?mnu_uid=3340&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민족의 정신문화, 유교소수박물관은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 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 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서원을 통하여 민족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민족문화의 전당이다.
이곳은 조선유학의 메카답게 서원과 관련한 귀중한 문화유산과 유학의 전말을 눈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유교박물관이다.
소수박물관은 2004년 9월 22일 개관을 시작으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함으로써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다가갈 것이다.
⊙ 영주 금성대군 신단
- 홈페이지
영주시 문화관광 https://www.yeongju.go.kr/open_content/tour/index.do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767번길 28
영주 금성대군 신단은 사적 제4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세조 때 단종임금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무참히 화를 입은 금성대군(錦城大君:이름 瑜, 세종임금의 여섯째 아들,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의 넷째동생)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그 일에 연루되어 순절한 의사들을 제사 드리는 곳이다. 조선 세조 원년(1455) 단종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 일파는 금성대군에게 모반의 누명을 씌워 삭령(朔寧)으로 유배시켰다가 다시 광주(廣州)로 이배(移配)시켰었다. 이듬 해 성삼문 (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이 상왕 복위운동에 실패하여 참혹하게 희생되자 그 일에 연루되었다 하여, 금성 대군은 다시 이곳 순흥으로 유배,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금성 대군은 당시 순흥부사 이보흠과 의기가 통하여 단종복위를 위한 격문을 짓게 하여 은밀히 순흥고을로 모여들게 하였다.
군비를 모으고, 무기를 장만하고, 군사를 조련하여 영월에 유배되어 있던 단종임금 복위를 꾀하는 거사가 무르익어가던 세조 3년(1457) 가을 어느날 밀의를 엿들은 순흥부의 한 관노의 밀고에 의하여, 관군의 습격을 받은 순흥 고을은 온통 불더미에 피바다를 이루는 도륙을 당하면서 폐부 (廢府)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숙종 9년(1683)에 순흥은 명예가 회복되고, 이어 숙종45년(1719) 고을사람 이기륭(李基隆)이 부사 이명희(李命熙)에게 알려, 단소(壇所)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금성대군 신단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영조 18년(1742) 경상감사 심성희(沈聖熙)의 소청에 의하였으며, 단소를 정비하고 중앙에 금성대군 위(位), 오른쪽 편에 부사 이보흠 위(位), 왼편에 무명 의사 위(位)를 모시고 순의비(殉義碑)를 세웠다.
* 금성대군 신단(사적 제491호)
이 곳은 조선 세조2년 (1456)에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순흥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세종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순흥부 이보흠 및 향중 유림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여 순절하자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된 제단이다.단종복위운동이 실패되자 순흥부는 폐부되었다. 그 후 숙종 9년(1683)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 의사들이 신원 되자 동와 45년(1719)에 부사 이명희(이명희)가 단소를 설치하였으며, 영조18년(1742) 경상감사 심성희가 단소를 정비하고 위를 모시고 순의비를 세워 매년 봄·가을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 여우생태관찰원
- 홈페이지
http://www.yeongju.go.kr/open_content/tour/index.do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481번길 33
여우생태관찰원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토종여우 복원을 위해 2016년 11월 5일 영주시 태장리에 개관하였다. 영주시에서 부지와 시설을 제공하고 종복원기술원에서 운영 중이다. 주로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든 여우를 보호하고 회복 시켜 자연으로 돌려내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여우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며 소백산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을 따라 설악산과 지리산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여우생태관찰원은 관리동과 홍보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전문해설사와의 동행 아래 생태학습장을 탐방할 수 있다.
⊙ 선비촌
- 홈페이지
http://www.sunbichon.net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유교문화 발상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우리 전통적 고유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에 재현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수서원과 연계되는 영주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그리고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산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선비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오감체험형전시와 참여형 이벤트, 전통문화체험의 기회가 수시로 제공되는 선비촌의 각종 기획프로그램에서 옛 선비들의 당시 생활상을 통해 잊혀져가는 수준높은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 부지면적 - 57,717㎡(17,460평)
* 전시가옥 면적 - 2,651㎡(802평)
* 주요규모 -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성황당 1동, 곳집 1동, 원두막 1동, 저자거리
* 수신제가(修身齊家)
김상진家, 해우당고택, 강학당'수신제가(修身齊家)’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올바르게 가꾼다는 뜻이다.선비들은 우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학문을 힘쓰며 일상의 생활윤리를 실천하는 일,곧 수신(修身)을 중요시했다. 이는 유학의 실천적인 학풍에 의한 것으로 선비들은 수신을 위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신제가의 공간에서는 자기수양을 위해 노력했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방식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입신양명(立身揚名)
두암고택, 인동장씨종가'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드높인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은 수신제가(修身齊家)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즉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이었다.입신양명의 공간에서는 중앙관직에 진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거무구안(居無求安)
김문기家, 만죽재, 정사'거무구안(居無求安)’이란 사는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살아갈 길을 고민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인격수양의 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무구안의 공간에서는 명상과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지않고 현실의 잘잘못을 비판한 영주 선비의 굳은 기개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김세기家, 김뢰진家, 장휘덕家. 이후남家, 김규진家, 두암고택가람집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이란 가난함 속에서도 바른 삶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비록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잘사는 것에 욕심이 나서 선비의 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곤궁함으로 인해 가볍게 스스로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우도불우빈의 공간에서는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선비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순흥향교
- 홈페이지
http://www.yeongju.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길 15-36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 시기는 미상이며, 처음에 순흥부(順興府) 북쪽 금성(金城)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야동으로 이건하였다.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石橋里)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71년에 중수하고 1975년에 누각과 단청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4칸의 동재(東齋), 7칸의 문루(門樓), 삼문(三門)·협문(夾門)·주사(厨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교육시켰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대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인과 장의(掌議) 수인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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