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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파전
- 노천파전
02-968-2494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28길 3 (휘경동)
노천파전은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 인근에 위치한 전통, 민속 주점이다. 두툼한 두께의 파전에 질린 이들에게 추천하며 얇은 두께로 식어서도 바삭바삭한 맛을 자랑한다. 또한 인근 타 가게에 비해 메뉴의 종류가 다양한데 파전류 외에 식사류와 안줏거리를 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저녁 시간대에 오픈하고 새벽까지 운영하여 많은 이들이 회식장소로 방문한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노천파전 / 참알탕
- 문의및안내
02-968-2494
- 쉬는날
매주 일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7:00~05: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문의 (02-968-2494)
- 취급메뉴
노천파전 / 참알탕 / 떡만두국 / 한치회무침 등
- 포장가능
가능
◎ 화장실
업소 내 위치/ 남녀개별
◎ 주위 관광 정보
⊙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 홈페이지
http://www.uos.ac.kr/main.do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163 (전농동)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조사, 수집, 보관, 전시하며, 이를 통해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지워하고 인근주민들에게는 가까운 문화공간으로 기능한다는 목적으로 1984년 9월 4일 개관하였다. 그동안 각종 특색있는 특별전을 꾸준히 개최하여 왔고 발굴 지표조사활동, 초청강연회 등을 통하여 연구 조사 및 교육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특히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은 대부분의 박물관에서 소외되고 있는 근현대사자료 전문 박물관에서 소외되고 있는 근현대사자료 전문박물관으로 발돋음 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유물수집 및 특별전시 등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 연화사(서울)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3길 56 (회기동)
연화사(蓮華寺)는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천장산(天藏山)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말사이다.서울 동부의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회기동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인 회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그 터에는 그녀의 원찰로 지어진 조그마한 절이있다.
이 곳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근본자성(根本自性)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한 연꽃과 같다는 의미에서 연화사라 불려 졌는데, 이후 묘련(妙蓮)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이는 모두 연꽃의 청정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연산군이 생모 윤씨의 명복을 빌고 비명에 간 원혼을 천도하기 위한 도량으로서, 연꽃의 기능 중 화생(化生)의 의미로 붙인 이름인 듯하다.
현재는 회릉이 서삼릉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경희여중ㆍ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터 아래 조그마한 사찰이 있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사찰의 모습이 아닌 빌딩숲에 인공적으로 뭍힌 도심속 사찰로 그 모습이 변모했지만, 사찰에는 폐비 윤씨는 물론 선의왕후의 원찰로서 많은 상궁들이 조성한 불화들이 남아 있어 왕실 원찰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냇가를 건너 가파른 고개를 지나 당도하는 옛 가람의 모습은 없지만, 도심 속 골목길을 따라 약간의 나무가 있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공원같은 곳 - 연화사에서 세속에 찌든 근심을 잠시라도 떨쳐 버릴 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 홈페이지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http://nhm.khu.ac.kr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회기동)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은 지난 1978년 개관한 이래 산업화, 도시화로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도심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써 우주와 지구의 기원 및 그 변천과정과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동물, 식물, 지질, 광물 등 국내 외 각지에서의 표본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생물과 그간의 생태변화를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전시하고 교육하며 연구하고 있다.
⊙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 홈페이지
http://museum.khu.ac.kr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회기동)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은 1956년 개관한 이래 고고역사민속 중심의 제1종 종합박물관으로서 학술, 교육, 전시, 문화재 지표 및 발굴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대학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박물관 전시실은 고고역사관, 무속관, 시베리아관, 특별전시관 및 IAUP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고역사관은 선사실, 삼국시대실, 금관실, 고려시대실, 자기실, 무기실, 신라실, 와당실, 옹관실로 구분되며,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속관은 루리나라 무속관련 도구, 무신도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시베리아관은 시베리아 민속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별전시관은 중앙현관을 이용하여 특별전시회를 개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IAUP기념관에는 경희대학교가 교육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해 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청량사(서울)
- 홈페이지
http://cafe.daum.net/buddha1080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로31길 10-3 청량사
청량사(淸凉寺)는 천장산(天藏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비구니 도량이다. 예부터 4대 비구니 도량으로 유명한 돌꽂이 승방이 바로 이 곳이다. 원래 청량사와 돌꽂이 승방은 별개의 절이었으나, 1895년 일제의 조선강점흉계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황후의 능인 홍릉이 조성케 되자 홍릉자리에 있던 청량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게 되었고, 때마침 돌꽂이 승방도 사세가 기울어 두 절이 병합되었다고 한다. 청량사는 한말에는 도성 사람들이 자주 몰려와 쉬던 휴양지였고, 일제 치하로 나라가 어려웠을 때는 많은 애국지사, 고승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불교운동에 앞장선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1939년 7월 12일에 한용운 선생의 회갑연이 이곳에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불교계 학자인 박한영(朴漢永)도 이 절에서 기거했으며 대방에 걸린 청량사 현판 글씨는 박한영의 글씨로 전해진다. 청량사는 회한의 역사 속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의 불심으로 도량을 가꾸어온 비구니대중스님들을 보듬어 안고 오늘도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원행으로 도심 속에 회향하고 있다.
* 연혁
신라말엽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청량사는 창건주와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문헌에서 보이는 청량사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예종 12년(1117) 9월 조에 고려중기 거사불교(居士佛敎)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 절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다.
이자현은 당시의 문벌귀족가문인 이자연(李資淵)의 손자로 벼슬을 버리고 춘천 청평산(淸平山) 문수원(文殊院)에서 은거하면서 고려중기의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가 서울 삼각산 청량사에 잠시 머물면서, 성품을 기르는 요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예종에게 그 답안으로 「심요(心要)」 1편을 지어 바쳤다는 것이다.
원래 지금의 홍릉 자리에 있었던 청량사는 1895년 일제의 조선강점흉계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정변 이후 청량사터가 명당의 정혈이라 하여 황후의 능인 홍릉이 조성케 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돌꽂이절인 석고사(石串寺)를 청량사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김정호(金正浩, ?~1864)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지금의 홍릉자리에 청량사가 표시되어 있고, 현재의 임업시험장 자리에는 돌꽂이절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니 원래 청량사와 돌꽂이절은 별개의 사찰이었으나 홍릉조성으로 청량사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고, 돌꽂이절 또한 폐사되면서 합병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청량사는 1890년대를 기점으로 신명을 다바친 비구니 스님들의 큰 원력에 의해 본격적인 중창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1894년 돌꽂이절에서 남채백(南彩白) 비구니 스님이 법당과 칠성각을 청량사로 옮겨 대니승방(大尼僧房)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이후 김봉학(金奉學), 신자영(申慈英), 장동일(張東日), 정부연(鄭富淵), 신원삼(申元三) 비구니 스님들의 연이은 불사가 이어졌다.
한편 1939년 8월 29일에는 이광(李洸), 이원혁(李原赫), 장도환(張道煥), 김관호(金觀鎬), 오세창(吳世昌), 권동진(權東眞), 이병우(李炳宇), 안종원(安鐘元) 등 20여 명의 지사들이 함께 모여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스님의 회갑연을 위로하며 망국의 한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이후 최근 30여년간은 혜은(惠恩), 상길(相吉), 혜명(蕙命), 동숙(東淑), 성법(性法) 비구니 스님들이 주지에 취임하여 중창과 도량정비 및 교화사업에 매진하여 오고 있다.
⊙ 서울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 홈페이지
http://royaltombs.cha.go.kr/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청량리동)
영휘원 안에는 조선왕조 제 26대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인 영휘원과 영친왕의 첫째 아들의 원인 숭인원이 있다. 엄씨의 위패는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모셔져 있다. 영휘원이 있는 이 지역은 원래 고종 황제의 비인 명성왕후 민씨의 홍릉이었으나, 1919년 고종의 장례 때 함께 묻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소재현 홍유릉에 이장하였다.
⊙ 세종대왕박물관
- 홈페이지
http://www.sejongkorea.org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청량리동)
세종대왕 박물관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기념관으로, 조선 세종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여 이를 길이 보존하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1970년 11월 준공하고 1973년 10월 개관하였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현대식 건물로, 전시실, 강당, 연구실, 자료준비실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시관은 한글실, 과학실, 국악실, 일대기실, 옥외 전시로 구성된다. 한글실은 세종 당시 펴낸 도서류를, 과학실은 조선 시대의 과학에 관련된 자료(금속활자 판자기, 측우기, 천문도 등)를 전시하고 있으며, 국악실은 각종 국악 악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일대기실은 세종대왕의 어진과 김학수가 수년 동안 그린 '세종대왕 일대기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세종의 치덕을 살펴 볼 수 있다. 옥외에는 세종대왕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와 구영릉석물(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수표(보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 배봉산
- 홈페이지
http://korean.visitseoul.net/index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
해발 108m의 배봉산에 조성된 배봉산근린공원은 산지형 공원으로 비탈졌으나 무장애 둘레길이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공원이다. 배봉산근린공원은 걷기에 최적화된 길이다. 보행로 또한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되어있어 걷기만 해도 운동량이 적당하며 중간에 벤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쉬어가기 좋다. 보행 데크가 잘 정비되어 있어 보행 약자에게도 좋은 산책길이자 운동길이다. 배봉산 정상부에 위치한 배봉산 보루는 2017년 2월9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홍릉수목원
- 홈페이지
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5030006
-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7 (청량리동)
홍릉수목원은 1922년 서울 홍릉에 임업 시험장이 설립되면서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제1세대 수목원이다. 이곳은 조선왕조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능(1897년)인 「홍릉」이 있었던 곳으로 「홍릉수목원」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지금은 이장되어 터만 표시되어 있다. 홍릉수목원은 국립산림과학연구원의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서, 국내외의 다양한 식물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여, 기초 식물 학문분야 발전은 물론, 식물 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조성한 시험 연구림이다. 홍릉수목원과 산림과학관은 매주 일요일은 일반인에게, 평일에는 학생 단체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하여, 자연 및 환경학습, 산림의 소중한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서울 의릉(경종,선의왕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홈페이지
문화재청 조선왕릉 http://royaltombs.cha.go.kr/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석관동)
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 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 면적 - 434,386㎡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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