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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여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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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내울


- 주소
경기도 여주시 여주남로 70 (월송동)

경기도 여주시 월송동 소재의 손두부 전문점이다.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인근 컨트리클럽의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연간 12만 명이 방문하는 여주 맛집이다. 직접 만드는 손두부는 물론이고 상에 올리는 채소들은 직접 밭에서 기른 재료를 사용하며 쌀도 직접 농사지은 믿을 수 있는 것을 사용한다. 여름에는 고소한 콩국수를 맛보고 겨울에는 뜨끈하고 몽글한 손두부를 맛볼 수 있는 것이 여내울의 장점이다. 외부 방문객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한 여주의 손두부 맛집이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여내울마늘보쌈

- 문의및안내
031-886-1282

- 쉬는날
명절 당일 휴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영업시간
10:00 ~ 21:00

- 주차시설
가능

- 취급메뉴
옛날 육개장 / 수제 떡만두국 / 우리콩 순두부 등

- 포장가능
가능





◎ 화장실
있음(남/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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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여주컨트리클럽


- 홈페이지
http://www.yeojoocc.co.kr

- 여주컨트리클럽
031-883-7000

- 주소
경기도 여주시 월평로 78 (월송동)

여주컨트리클럽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명문 코스로 총면적 380,810평에 코스전장 9,444m로 라이트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페어웨이가 넓어 장타를 구사할 수 있는 웅대한 국제 수준의 명문 골프장이다. 페어웨이가 넓어 장타를 부담없이 칠 수 있으며 대체적으로 거리가 짧고 경사가 완만하여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부담이 없는 코스이다.

⊙ 여주향교


- 주소
경기도 여주시 향교1길 24

여주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고려말~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다. 여주향교는 본래 고려 말 가정 이곡에 의해 마암 근처에서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85년(숙종11년)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에 재건하였다.하지만 이후 부락에 자주 괴질이 발생하여 마을 주민이 희생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 위치로 이건 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여주 향교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건물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다. 전교 1명과 장의 6~7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주요 문화재
1) 대성전
2) 동무
3) 서무
4) 내삼문
5) 명륜당
6) 외삼문

⊙ 세종국악당


- 홈페이지
http://www.yjcf.or.kr/cms/content/view/282

- 주소
경기도 여주시 영릉로 125

세종국악당은 여주시에 있는 시립공연장으로 1990년에 건립되었다. 여주시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증진하고자 여주시가 건립한 국악당은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세워졌다. 좌석 수 388석의 공연장과 연습실을 보유하고 있는 국악당은 각종 문화 예술 활동의 거점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공연 등이 진행되고 있다. 특수 조명시설과 무대막, 영사 스크린, 피아노, 무대 음향 시설 등 공연에 필요한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음악회와 공연, 연극, 전시, 강연 등 여주시민들이 수준 높은 문화예술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관 신청은 시설 확인 후 방문 신청 또는 이메일 접수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주변에는 여주향교, 조선효종영릉재실, 여주 도예단지 등의 관광명소가 있으며, 이천쌀문화축제도 즐길 수 있다.

⊙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 홈페이지
세종대왕유적관리소 http://sejong.cha.go.kr/

- 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10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사적 제195호인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 그리고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세종대왕께서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꾸며져 있다.

<출처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 강한사


- 홈페이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1472

- 주소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13

강한사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대로사라고도 하며,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송시열은 인조 11년(1633) 생원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을 거쳐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으며, 후일 효종의 북벌론을 추진하며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노론의 영수로서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대학자로 예론(禮論)에 밝았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런 송시열이 여주에 머물 때마다 효종의 무덤인 영릉을 바라보며, 효종의 북벌 정책에 대한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후에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김양행에게 송시열의 사당을 짓게 하고 친히 비문을 지었으며, 송시열을 높여 대로(大老)의 명칭을 붙여 사당을 대로사라 하고 사액하였다. 그 뒤 1873년 10월에 강한사라 개칭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당은 크게 사당과 강당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실이자 관리소인 추양재, 대로사비각, 홍살문 등이 있다. 강한사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서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서쪽에 위치한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을이면 떨어진 은행나무 잎이 노란 카펫처럼 깔려 고즈넉한 사당의 전경과 아름답게 어울려 운치가 있다.

⊙ 양섬


- 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308

경기도 여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자연공원으로 양섬은 4대 강 사업으로 조성된 인공섬이다. 남한강 한복판에 자리한 이 섬은 400,000㎡ 가량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여주의 세종대교 인근에 있어 오토캠핑장과 차박 캠핑에 용이하도록 운영 중이었으나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야영과 취사 금지되어 방문객들의 소풍 나들이 장소가 되었다. 양섬에는 잔디공원과 야구장뿐만 아니라 자전거도로 또한 잘 되어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다는 것과 여러 가지의 요소로 인해 주말 나들이 방문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 여강길(1코스~5코스)


- 홈페이지
http://www.rivertrail.net/

- 주소
경기도 여주시 교동

1. 옛나루터길 : 17.5km (5~6시간)
여주터미널에서 출발해 ‘달을 맞는 누각'이라는 영월루(迎月樓)를 시작으로 남한강(여강)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제방을 쌓기 전 모래에서 은빛이 난다고 해서 은모래금모래라고 부르는 강변유원지를 지난다. 남한강과 연양천과 합수지점에서 복원된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수운이 발달했던 시대에 정류장인 나루터를 지나는데 이호, 부라우, 우만리나루터를 만난다. 치수를 위해 쌓은 제방, 배수문, 취수장 등을 볼 수 있으며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무어장군을 기념하여 다리이름을 정한 무어장군교(MOORE 將軍橋) 표석도 있다. 강과 바위 어우러진 부라우나루터는 절경이다.

2. 세물머리길 : 21km (7~8시간)
청미천의 여울을 건너 크고 작은 강돌을 밟으며 모랫길을 따라가면 삼합리 대오마을이 나온다. 삼합은 말 그대로 세 곳이 합쳐짐을 이른다. 세 강(남한강, 청미천, 섬강)과 삼 도(강원, 경기, 충청도)가 한 곳에서 만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오마을에서는 남한강의 백미로 꼽히는 격조 높은 자산(紫山)의 당당함과 여유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3. 바위늪구비길 : 13.7km (4~5시간)
바위늪구비는 남한강의 물이 늘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늪이다. 강물이 늘면 남한강이 되고 강물이 줄어들면 늪이 된다. 더구나 굳센 바위와 검은 물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곳에 이무기가 산다는 전설을 들으며 자란 마을 사람들은 무서움 때문에 늪의 깊이를 재지는 못했을 것이다. 늪을 따라 고운 모래 길을 걸어가면 자연이 속삭이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단양쑥부쟁이가 산다는 척박한 땅을 지나면 고라니와 꿩이 나오는 긴 갈대숲이 길게 나온다. 강 옆에는 드라마 촬영지가 있다.

4. 5일장터길 : 13km (5~6시간)
신륵사를 시작으로 세종대왕릉역 까지 총 12.4km 거리의 코스다. 신륵사는 마암으로 유래된 것으로 치수와 관련이 있는
유명한 사찰이며, 신륵사 앞으로는 조선시대 4대 나루였던 조포나루터가 있다. 조선 제4대왕 세종, 조선 제17대왕 효종의 왕릉을 보며 역사속 현장으로 빠져들고, 남한강 여주의 청정 농산물을 판매하는 여주5일장에 들려 사람사는 이야기에 빠져보기에 좋다.

5. 황학산길 : 6.5km (3시간)
여강길 5코스는 여주역에서 시작해서 명성황후생가에서 끝나는 짤막한 코스로 여주 시내에 위치한 황학산을 걷는 코스이다. 황학산수목원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고 멸종위기 2급 단양쑥부쟁이를 볼 수 있으며 종점인 명성황후생가에는 여주자활에서 운영하는 소박한 민속촌에서 소소한 볼거리와 푸짐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 여주 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 홈페이지
http://sejong.cha.go.kr

- 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 54세로 승하하실 때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태조6년(1397년)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조선조 제3대 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8년 (1408년) 음력 2월11일(양력 3월17일)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같은 해 2월 16일(양력 3월22일) 우부대언 심온의 딸(소헌왕후 심씨)과 결혼하였다.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영릉의 특징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의 하나인 영릉의 구조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하며, 그 좌우 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앞에는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꾸어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마리를 밖을 향하여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봉분앞 한층 낮은 단에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石馬)를 배치하였다.

* 전시유물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립한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 명하여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세종대왕의 업적
1) 한글창제
대왕은 궁중에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세종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연후인 1446년 9월(음력) 에 이를 반포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통한 우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익히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되고 있다. 한글 창제의 더 큰 의의는 한문을 무조건 숭상하던 많은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글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 학문창달
대왕은 특히 학문을 사랑하여 집현전을 부활하여 우수한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하고 옛 제도를 연구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토록 하였다. 우선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용비어천가·농사직설·고려사·삼강행실도·팔도지리지·석보상절·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육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田(전)제)와 세제를 정비하는 등 문물제도를 크게 개건하였다.

3) 과학의 진흥
대왕은 국민을 위하여 농업을 진흥하려는 데 뜻을 두고 한 평생을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장영실, 이천 등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등 을 만들었다. 또한 측우기를 제작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토록 했으며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수위를 재게하고 외국의 역법(曆法)을 참작하여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했다. 이리하여 천문·지리 등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4) 외치와 국방
대왕은 역대로 신사상과 신기술의 통로였던 중국의 명나라와의 교류정책을 적극 펼치는 한편 바다를 건너와 백성을 괴롭히는 왜구를 응징하여 이종무 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는 한편 3포를 개항하여 일본과의 선진관계를 도모하였다. 북방으로는 최윤덕으로 하여금 평안도의 야인을 평정케하여 4군을 설치하고 김종서로 하여금 함경도에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경을 확정시키는 등 국력을 강하하였다.

5) 음악의 정리
조선 초기 까지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음악과 중국음악이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상태였으나 세종대에 이르러 정리하였는 데, 이는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이었다. 대왕은 박연 등으로 하여금 각종 악기를 만들게 하고 특히 편경과 편종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악곡·악보 등을 종합 정리하여 바로잡아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 효종대왕릉
영릉(寧陵)은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1618∼1674)의 무덤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懿陵)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 효종대왕릉의 형태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고,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동자석(童子石)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조선시대 왕릉의 형태를 보면 세조 때부터 병풍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나, 성종의 무덤인 선릉(宣陵)부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영릉(寧陵)에서 다시 사라져 왕릉 배치에 있어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 각 1쌍이다. 왕비릉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배치는 왕릉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다.

* 대동법과 상평통보, 효종에 대하여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 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 해슬리나인브릿지


- 홈페이지
http://www.haesley.com/

- 주소
경기도 여주시 명품1로 76 (연라동)

해슬리나인브릿지는 경기도 여주시 소재의 회원제 골프장이다. 세계 100대 골프장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뛰어난 골프장이다. 해슬리나인브릿지는 18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고급 벤트 그라스를 사용하여 모든 홀과 티 그리고 페어웨이를 조성하여 샷 감각과 그린의 스피드를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국내 최초 페어웨이에 골프 카트 진입이 가능하다. 잘 관리된 그린과 고객들의 만족을 위해 구성되어 골프장을 찾는 골퍼들에게 해슬리나인브릿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최고의 골프장이다.

⊙ 여주미술관


- 홈페이지
http://yeojuartmuseum.com/wp/

- 주소
경기도 여주시 세종로 394-36 (점봉동)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해 있는 미술관이다. 2019년 개관하였으며 미술관 설립자이자 작가인 박해룡의 작품들과 수집한 미술작품 700여 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깔끔한 외관과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으로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장소이며 여주 미술관의 감성을 닮은 카페 돈키호테는 독특한 소품들로 내부를 꾸며놓았다, 미술관 감상 후 조용하고 한적하여 카페에서 잔디정원을 바라보며 휴식하기에 좋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주말 나들이 삼아 방문하기 손색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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