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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정묵밥
- 왕자정묵밥
032-933-7807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55
왕자정은 묵 요리 전문점이다. 고려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라 사계절 내내 경관이 좋지만 특히 봄에는 벚꽃이 만개해 황홀함을 더해준다. 전체 수용인원은 130명 정도로 모두 온돌식 좌석이다. 대표 메뉴는 묵밥이다. 피자팬에 담겨 나오는 도토리전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이며 도토리무침 또한 맛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묵밥
- 문의및안내
032-933-7807
- 쉬는날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영업)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0:00~21:00 (주문마감 20: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문의 (032-933-7807)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취급메뉴
묵밥 / 묵전 / 묵무침 / 콩비지 외
- 포장가능
가능
◎ 화장실
남녀개별, 식당내부
◎ 주위 관광 정보
⊙ 강화유수부이방청
- 홈페이지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고려 고종 때 궁궐이 있었던 터에 위치하고 있는 이 건물은 조선중기 강화유수부 6방(六房)중 하나인 이방청(吏房廳) 건물이다. 팔작지붕에 민도리 홑처마 양식으로 된 현재의 건물이 건립된 것은 효종때로 유수 정세규(鄭世䂓)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金魯鎭)에 의해 내부가 수리되고 괘홀당(掛笏堂)이라는 당호가 게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고려궁지
- 홈페이지
https://www.ghss.or.kr/user/facilities/tour/goryeoPalace.do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guide/entrance.jsp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고려 고종 19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가 강화로 옮겨졌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 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1977년 보수 정화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강화유수부동헌
- 홈페이지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강화유수부 동헌은 오늘날 군청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던 관아 건물. 이 건물은 강화유수부의 동헌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은 관아 건물이다. 여러차례에 걸친 개조로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 인조 16년(1638)에 유수 김신국이 개수하였고, 영조 45년(1769)에 유수 황경원이 현문관이라 명명 하였다. 현재는 명위헌과 이관당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당호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였던 백하 윤순(1680∼1741)의 필적이다.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http://www.ganghw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 강화문학관
- 홈페이지
http://www.ganghw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 40
강화읍 관청길 용흥궁공원 내에 위치한 강화문학관은 강화 출신의 수필가 조경희 선생에 의해 건립되었다. 조경희 선생이 강화도에 기증한 소장품 8,000여 점을 보관하며 한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문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 김상용순절비
- 홈페이지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이 비는 조선 인조때 문신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했으나 청군이 강화도를 함락하자 강화산성 남문루 위에서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선원 김상용 선생의 위국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순조 때 유수로 부임한 공의 7대손 김매순이 건립한 순절비이다. 명종 16년에 출생한 김상용 선생은 장렬 김번의 증손이며 병자호란시 청국과의 화의를 극력 반대한 척화파 김상헌의 형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우의정을 거쳐 인조 15년에 순국하였으며 그 위패는 선원면에 위치한 충렬사에 봉안하였다. 당초 순절비는 구 남문지에 있던 것을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옮겨 세우던 중 숙종때 증손인 김창집이 세운 구비가 발견되어 현재 신.구비를 나란히 세웠다.
⊙ 강화 원도심 스토리워크
- 홈페이지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trip/storywalk.jsp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강화읍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직접 걸으며 강화의 역사, 산업, 종교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는 강화 스토리워크는 강화 역사만이 아닌 대한민국 근대사와 연결돼 있기에 더욱 의미있는 곳이다. 강화의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심도직물(터), 한옥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교회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한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 한국 천주교의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건을 기념한 노독사목 표지석, 고려시대부터 강화읍의 한켠을 지키고 있는 700년 은행나무, 강화 직물 이야기를 소개한 이화견직 담장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 공장이었던 조양방직, 강화의 독립운동의 현장인 강화중앙교회, 합일초등학교 독립운동길, 강화의 전통이었던 직조산업을 오감으로 느낄수 있는 소창체험관까지 이어진다. 친환경 전기자전거를 타고 고려궁지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상품도 운영중이다.
⊙ 오읍약수터
- 홈페이지
강화군청 문화관광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문길 110 오읍약수터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때 북문 건축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몽골군대가 이 땅을 침략하였을 때 고려 고종은 강화도로 옮겨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1232년 2년간에 걸쳐 내성과 궁궐, 관아를 건축하였다. 북문을 건축하던 중 날이 가물어 갈증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고종은 북문 앞에 제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렸는데, 하늘이 어둡기 시작하고 천둥이 쳤다고 한다. 바로 그때 벼락이 큰 바위에 떨어지며 물이 솟았는데 바로 지금의 약수다. 이에 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다섯오’에 ‘울 읍’자를 써 오읍(五泣)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 용흥궁
- 홈페이지
강화군 문화관광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 강화산성
- 홈페이지
http://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http://www.cha.go.kr
- 주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국화리, 신문리, 관청리, 남산리
강화읍은 고려시대 몽골이 침입했을 때 잠시 도읍을 옮겼던 곳으로 이와 관련한 유적들이 많다. 강화산성 역시 그같은 문화유산으로 고려시대에 쌓은 산성이다. 강화산성은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고자 착공되었다. 공사가 완공되기도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축성되었다. 고려의 성은 내, 외, 중성이 있었는데 내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7,122m이고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축성하였다. 외성은 1233년에 축조되기 시작했다. 이 성들은 모두 토성이었으나 1677년에 강화 유수 허질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석성으로 쌓았다. 1709년에 강화유수 박권이 다시 개축했고 조선 후기에 보수가 이어졌다. 강화산성에는 안파루(남), 첨화루(서), 망한루(동), 진송루(북)의 사대문과 암문, 수문, 장대 등의 방어시설이 있다. 강화산성은 구한말에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강화도조약 체결 등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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