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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산시] 정박사냉면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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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사냉면삼계탕


- 정박사냉면삼계탕
053-815-6054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경안로50길 40-3

[경북 경산시 중방동에 있는 삼계탕 전문 정박사냉면삼계탕]
정박사냉면삼계탕은 삼계탕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식당이다. 삼계탕 이외에도 냉면, 육전을 메뉴로 하고 있으며, 300석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단체예약도 가능하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삼계탕

- 규모
지상 1층

- 문의및안내
053-815-6054

- 쉬는날
명절연휴 (전화로 문의)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0:00 ~ 21:00

- 예약안내
전화 예약 문의 (053-815-6054)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취급메뉴
약선삼계탕 / 삼계탕 / 물냉면 / 비빔냉면 / 육전

- 포장가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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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남매지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계양동

경상북도 경산 시내에 자리한 저수지이다. 남매지라는 이름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조선시대 때 부모를 잃은 가난한 오누이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오빠가 한양으로 떠난 사이 여동생은 심보 고약한 빚쟁이의 첩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여동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고, 이 소식을 들은 오빠도 함께 자결하면서 이들 오누이가 목숨을 잃은 저수지 이름이 남매지가 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인 전설과 달리 지금의 남매지는 경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자 도심 야경 명소로 사랑받는 데이트 코스가 되고 있다. 다.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저수지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가교에 알록달록한 조명이 켜지는데, 저수지 둘레를 따라 가로등까지 불을 밝히며 화려하게 변신한다. 저수지를 따라 산책 삼아 걷기 좋다

⊙ 경산향교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향교길 14-19

1390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550년에는 현령 박세린(朴世麟)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3년에 현령 박창(朴敞)이 중수하였으며, 1681년에 현령 홍처공(洪處恭)이 감사 이수언(李秀彦)에게 건의하여 교궁(校宮)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박공지붕 겹처마인 5칸의 대성전과 5칸의 명륜당, 삼문·중문과 최근에 새로 지은 4칸의 모성당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 안흥사(경산)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남매로 86 (상방동)

경산 안흥사는 경북 경산시 상방동 71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사찰이 어려움에 처해 부득이 옮겨야할 경우가 있다면 전란의 피해 또는 풍수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것은 사찰만이 가지는 종교적 영속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산(慶山)의 안흥사(安興寺) 역시 그러하다. 사찰이 퇴락하고 없어지더라도 이처럼 불가의 인연은 놓지 않아 그 이름을 이어가는 사찰 중 하나이다. 안흥사의 지금 자리는 창건과는 거리 먼 곳이다. 절을 3번 옮겼는데 그것도 한국전쟁 이후에 옮겼다. 그것도 부득이한 여러 이유로 인해 가람을 옮겨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사격이나 사찰의 재정이 떨어지고 신도들도 차츰 떠나가게 마련인데 지금도 안흥사는 불법홍포와 경산지역 포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경산불교회관을 신축해 불자들을 위한 문화공간과 교육공간을 활용해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신라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3번의 이건으로 인해 특별한 자료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안흥사지만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을 접고 새로운 불국정토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노력해 나가고 있다.


⊙ 혜광사(경산)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4길 7 (삼북동)

혜광사가 자리한 곳이 ‘연화부수(蓮花浮水)’, 곧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국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비록 도심의 자그마한 도량이지만 부처님 진리자리가 화현한 곳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해탈문이 열리듯 혜광사는 눈 먼 중생들을 위한 포근한 안식처이자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경내 이곳 저곳에 꼼꼼히 가꾸어 놓은 금낭화, 유채꽃, 쑥부쟁이 등으로 단장한 화사한 화단은 마치 연화장 장엄을 해놓은 듯 방문객을 반갑게 맞고 있어 마치 산사의 어느 절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여서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고운 마음 씀씀이를 읽는 듯 하다.

* 창건배경 및 역사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혜광사는 1931년 창건됐다. 혜광사의 사찰 건물은 조선시대 자인현 객사(客舍)로 쓰던 건물을 일제강점기 ‘투현(透玄)’이라는 일본승려가 일본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현 위치로 이건해 일본식 사찰로 건축해 운영해왔다고 전한다. 일본승려가 이 곳에 터를 정한 것은 이 곳이 당시 경산의 중심지였으며 풍수적으로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인 ‘연화부수형국(蓮花浮水形局)’의 명당자리였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했던 한국스님인 혜광(慧光) 스님이 이 곳에서 주석하면서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대한불교 법화종단에 사찰을 등록하게 됐다.

이 때부터 주지스님의 법명을 따 ‘혜광사’라 사명을 짓고 지금의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를 국내 모 사찰에서 모셔와 명실공히 한국불교 법화종 사찰로 사격을 일신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혜광사는 점차 쇠락해져가 거의 폐사직전에 놓였던 것을 1975년 사찰의 주지로 새로이 부임해 지금까지 주석하고 있는 법화종 원로 혜문(慧門) 스님이 인근 부지를 매입해 지금의 대웅전을 중창하고 지금의 사찰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혜광사는 지난 1962년 전통사찰로 등록 지정됐다.


⊙ 경산문화원


- 홈페이지
경산문화원 http://gsc.kccf.or.kr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서상길 75 (서상동)

경산문화원은 1962년 경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리고자 설립되었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문화강좌 등을 진행한다. 지난 60년간 크고 작은 경산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경산 문화원은 올해도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사업을 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경산 시민의 삶 속에 문화의 향기를 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경산포교당(보문사)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로26길 20

도심사찰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구나 전통사찰일 경우 포교와 연관되는 불사의 어려움도 함께 수반된다. 그럼에도 가없는 정진과 함께 포교의 원(願)을 놓지 않는 까닭은 부처님의 자비원력에 대한 숭고한 종교적 약속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경산 보문사(普門寺)’라는 이름을 함께 쓰고 있는 경산포교당은 전통사찰임에도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 많은 방법을 모색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찰이다. 하양포교당과 함께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포교당으로는 단 2곳인 이 곳 경산포교당은 도심 빌라 숲에 가리워 신음하고 있다. 또한 하양포교당과 달리 매우 협소한 장소에 위치해 있어 전통사찰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도 전통사찰이라 불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가선 주택건물로 인해 전통사찰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경산시 삼북동 어느 동네 골목에 자리한 경산포교당은 지하1층 지상 2층의 단촐한 주택식 건물이다. 입지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경산포교당은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나가고 있으며 어느 누가 사찰을 찾아와도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공간이 협소한 까닭도 일조했으리라 여겨진다.이러한 이점을 살려 지난 20년간 어린이법회를 거르지 않고 봉행해와 미래불교의 새싹인 지역 어린이 포교에도 선두를 점하고 있다. 경산포교당은 앞으로도 사찰을 벗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 복지사업, 자원봉사 등 뜻깊은 실천운동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 천마아트센터


- 홈페이지
https://cmac.yu.ac.kr/cmac/index.do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동)

대극장, 중극장, 갤러리, 연습실1.2, 리허설룸 등을 보유한 천마아트센터는 복합예술공간으로서 주변의 여러대학(16개 대학)의 문화와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콘서트, 뮤지컬과 관현악, 국악연주회,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와 전시를 선보였으며, 어린이 뮤지컬과 같이 세대별 특성을 고려한 공연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영남대의 빼어난 캠퍼스 풍경과 천마아트센터 주변의 경관을 이용한 조각심포지움 등도 기획 중이다.
* 개관일 2009년 4월 28일


⊙ 영남대학교박물관


- 홈페이지
영남대학교박물관 http://museum.yu.ac.kr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동)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국내의 역사·고고·예술·민속 및 인류학 분야의 자료, 특히 대구·경산 지역에서 발굴, 조사되는 신라·가야문화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보관·전시하여 이에 관한 자료의 조사연구에 기여하며, 향토문화의 전승·발전과 인류문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영남대학교박물관은 기증·수집 유물 12,687점과 발굴 유물 10,000여 점 등 총 22,000여 점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전국적으로 손꼽힌다. 전시실은 총 2,314㎡, 11개 전시실과 로비로 되어 있다. 로비에는 높이 6m의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의 탁본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으며, 1층은 상설전시실로 고고, 조각·공예, 서화, 민속, 기증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발굴유물, 임당, 고지도, 기증실, 아트스페이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 홈페이지
https://www.gbgs.go.kr/open_content/tour/index.do

-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청운2로9길 (조영동)

경산분지의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는 압량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경산시의 동북방 영남대학교 앞 구릉(해발 50~75m)에 봉토분들이 밀집해 있다. 이들 대형분들은 가장 서쪽의 임당동 고분군, 중앙의 조영동 고분군, 동쪽의 부적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진다. 이 가운데 임당동 고분군은 영남대학교 앞 구릉의 주능선에서 서남으로 뻗는 지맥의 능선이 경산들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능선의 상부를 따라 조영된 7기의 대형 봉토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단일의 원형분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으나 몇 기의 무덤을 가진 각 봉토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동산과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된 것도 있다.임당동 고분군 가운데 4기(2,5~7호분)의 봉토분이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1982년 발굴조사되었다. 조사결과 2호분은 남분과 북분으로 구성된 표형분이고, 5~7호분은 6개의 봉분이 이어져 하나의 동산과 같이 거대한 봉분으로 보이게 된 다곽식이었다. 각 단일 묘곽에 씌어진 봉분의 크기는 지름이 17~20m, 높이 4~5m 정도였다.

묘제는 암광 목곽묘가 중심으로 이 곳의 기반암인 청석암반층을 파서 묘광을 만들고 거기에 목곽을 설치한 것이다. 이것들은 단곽식도 있었으나 장방형의 주곽과 방형의 부곽을 창자형으로 배치한 주부곽식이 대부분이었다. 또 지상에 할석과 천석으로 쌓아 올린 횡구식 석실묘도 1기 조사되었다. 매장주체부의 크기는 주곽이 길이 4m, 너비 2m, 깊이 2m, 부곽은 길이 4m, 너비 4m, 길이 1.5m 정도였고 주곽에는 장대석으로 뚜껑을 하였다. 여기에서는 금동관과 관식, 금제 귀고리, 은제 허리띠, 금동제 신발,금·은제 반지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금동제 고리자루 큰칼, 은장식 철투겁창, 금동제 화살통장식 등의 무구류, 금동제와 철제의 각종 마구류, 삼두마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각종 토기류 등 약 4,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이한 것은 각 무덤에는 피장자의 인골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대형의 무덤들에는 주곽과 부곽에 각각 1~3인이 순장된 것이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과 묘제로 보아 발굴된 것들은 4~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삼국사기」등에 전하는 압독국(압량소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출토 유물이 모두 신라문화권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나, 질적인 측면에서 경주의 대형분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압독국은 신라의 지배를 받던 소국의 형태로 이 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사된 고분들 가운데 일부를 복원하고,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전시실을 마련하여 그 무덤의 구조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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