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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경상남도 함양군] 장수오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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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오리촌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하림강변길 31

함양읍 하림강변길에 있는 장수오리촌은 오리 전문식당이다. 오리불고기를 돌판 위에서 구워서 숙주 등 채소와 함께 먹은 뒤, 마지막에 야채볶음밥을 주문해 불판 위에서 볶아 먹는다. 오리불고기를 주문한 고객에게 오리탕을 무료로 제공한다. 실내는 넓은 편이며 홀과 룸 모두 좌식 테이블이다. 모임이나 행사 장소로도 제격이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약선오리불고기

- 문의및안내
055-963-1333

- 쉬는날
매주 화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1:30~21:00

- 주차시설
가능

- 취급메뉴
약선오리불고기 / 야채볶음밥





◎ 부대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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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함양문화원


- 홈페이지
함양문화원 hamyang.kccf.or.kr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원교1길 6

함양문화원은 향토문화 발굴사업, 교육사업 및 향토 예술 활동을 하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보림사(함양)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3길 32 (함양읍)

보림사는 함양의 중심인 함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함양은 신라의 국경지대로 백제와의 패권다툼의 공방전이 계속된 곳으로 남쪽에는 지리산이, 북쪽에는 덕유산 등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에 보림사가 위치한다. 도심에 자리한 보림사는 10여 분 거리에 군청을 비롯해 군의 주요 시설들과 접해있으며, 용산사지인 함양중학교와 인접해 있다. 특히, 보림사 입구에는 상림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최치원이 천령군의 태수로 있을 때 인공으로 조성한 숲이다. 봄에는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 볼 수 있다. 함양군 포교당 보림사(寶林寺)는 1910년에 일제강점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족정기와 혼을 되살리려는 백용성 조사(白龍城 祖師)의 뜻에 따라 당시 지리산 벽송사에 주석하던 동운화상(東雲和尙)이 함양읍에 민가를 구하여 인법당으로 개조한 후 불법홍포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시교당으로 창건하였다.

암울한 시대에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던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태로운 시기에 실로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전당이었다. 희망은 사람들의 간절한 원을 담아내어 청정무구한 땅이 되었으니, 그것은 전각의 당당한 위엄이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종묘의 위상으로 일군 성과가 결코 아니다. 학교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보림사는 유치원을 개원하여 대한민국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는 배움의 전당의 역할도 하였다. 70세가 훌쩍 넘긴 어르신들은 그 당시 유치원을 다닌 이야기를 하는 등 추억이 되어주고 있다. 또 30년 전에는 이곳에서 제일 큰 집에 법당이 자리하여 온갖 동내 잔치들이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불자들이 많다고 한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분단, 그리고 이념의 대립과 갈등의 처절한 틈바구니에서 보림사는 오직 주민의 평안과 희망을 주는 곳으로 상처받은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중생들의 안식처를 자처한 보림사는 해인사 포교당으로 편입되어 지금까지 끝임 없는 중생구재의 장이 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쉼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보림사의 후원과도 같은 천연기념물 ‘함양상림’공원에 연밭을 조성하는데 크게 힘을 모아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면서 함양을 비롯하여 인근 포교의 전당으로서 불교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 모두가 오롯한 신심이 불자들의 마음을 열게하여 불심을 일군 덕(德)이라 할 수 있다. 미륵전에 있는 옛 용산사지에서 출토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함양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咸陽龍山寺址石造如來立像)’ 또한 보림사의 큰 자랑이며 불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 함양문화예술회관


- 홈페이지
https://www.hygn.go.kr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

함양군문화예술회관은 2011년 11월 25일 개관했으며 대공연장(486석)과 소공연장(205석),전시실로 함양군민들의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소중한 문화예술 공간입니다. 각종 음악회,연극,뮤지컬,미술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심어주고 군민들에게는 아름다운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개관일 : 2011년 11월 25일


⊙ 상림공원


- 홈페이지
https://www.hygn.go.kr/tour.web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49

함양은 지리산 아래에 있는 고장으로 예전에는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다. 경상 우도의 유학을 대표하는데다가 산 좋고 물 좋은 땅이라서 함양에는 양반 사대부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다. 함양을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은 옛 친구보다도 더 그리운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최치원이 이곳 천령 군의 태수로 와서 조성했다는 상림이 그것이다. 이곳에서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들러본 사람들의 추억과 낭만이 서려있는 곳, 이름 높은 한 지방관의 애민정신이 서려있는 곳. 그곳이 상림이다.

상림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상림에는 뱀, 개미, 지네 등의 미물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최치원은 어느 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상림에서 뱀을 만나 매우 놀랐다는 얘기를 듣는다. 상림으로 달려가 이후 모든 미물은 상림에 들지 마라 하고 외치니 그 후 상림에는 뱀, 개미 등의 미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지극히 주술적인 이야기지만 함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상림에는 뱀과 개미 등이 없다고 주장한다. 상림에서 뱀과 개미 등이 정말 없는지를 확인해 봄직하다.

상림의 아름다움은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상림은 숲속 나무 그늘에 돗자리 펴고 누우면, 도심 속의 신선의 정취를 느낄 것이다. 또한 상림의 숲속에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대화와 사랑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상림에는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와 최치원 신도비, 만세 기념비, 척화비, 역대 군수, 현감 선정비 군 등의 비석, 이은리 석불, 다볕당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또한, 상림에는 120여 종의 낙엽활엽수가 1.6km의 둑을 따라 80~20m 폭으로 조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원으로도 좋은 곳이다.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며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피서지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을 배우는 학습의 장으로 그 가치를 더한다.

⊙ 함양향교


- 홈페이지
http://www.hygn.go.kr/tour.web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원교길 46-7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말 두문동 72현(杜門洞七十二賢)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의 「소소당기(昭昭堂記)」에 의하면, 1398년(태조 7)경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제기고(祭器庫)·전사청(典祀廳)·전직사(典直舍) 등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동재(東齋)·서재(西齋)·태극루(太極樓)·교직사(校直舍)·내삼문(內三門) 등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각 6칸의 대성전 및 동무·서무,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와 서재, 내삼문, 4칸의 전사청, 제기고, 고직사(庫直舍), 전직사, 태극루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태극루의 현판은 1881년(고종 18)경에 당시 명필가인 하동출신 박문회(朴文會)가 쓴 것이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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