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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경상남도 통영시] 카페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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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만날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도천3길 26-7 (도천동)

카페 만날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자리한 아담한 카페로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앞마당을 가진 카페를 만날 수 있다. 마당에는 나무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소품이 비치돼 있어 특유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해가 넘어가는 일몰시간이면 실내 일부 조명을 끄고 온전히 시간이 빚어낸 하늘을 감상하도록 하고 있다. 커피와 티 외에도 직접 구운 당근 케이크와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카눌레 등 디저트도 선보인다. 테이블은 많지 않지만 어느 공간에서든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분위기다. 해저터널이 걸어서 1분 거리라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아인슈페너

- 문의및안내
0507-1347-1276

- 쉬는날
매주 수요일 / 비정기적 휴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1:00~19:30 (라스트오더 19:00)

- 주차시설
없음

- 취급메뉴
아몬드크림라떼 / 당근케이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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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해저터널(통영)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통영해저터널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해저터널이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너비 5m, 높이 3.5m이다. 그 전의 미륵도는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때는 도보로 왕래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민의 이주가 늘면서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해저터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양쪽 바다를 막고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터널 입구에 쓰여 있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문'이라는 뜻이다. 통영시내 당동 쪽 터널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터널 내부는 포장된 경사로이며 약 483m 길이이다. 안쪽에 통영 관광 명소들에 대한 소개 판넬이 전시되어 있다. 콘크리트 구조로 약간 음침한 분위기이지만, 우리 역사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 착량묘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착량길 27 (당동)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전란이 끝난 이듬해인 선조 32년(1599) 수군들과 이곳 주민들이 공의 충절과 위훈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판도가 바라보이는 착량언덕에 초옥을 짓고 공의 위패를 모시어 춘추향사와 기신제를 모시었으니 이것이 이충무공 사당의 효시이다. 그후 고종 14년(1877) 공의 10세손 이규석 제198대 통제사가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그 이름을 착량묘라 하였으며 이때 호상재도 같이 지어 지방민의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착량묘는 비바람으로 퇴락된 채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다가 1974년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자 그해부터 1985년까지 5차례에 걸쳐 정화사업을 벌여 동재와 고직사, 외삼문, 일각문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목조건물로 기둥머리에 포작을 두지 않은 매우 검박한 형식의 건물이다. 화강석을 잘 다듬어 만든 장대석기단과 원형정평주초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1974년 개축시에 만든 것이다.서재는 2칸의 마루와 한 칸의 방으로 된 팔작지붕건물로 본래 강학용의 건물이거나 향사를 준비하는 용도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재는 서원의 양식을 갖추기 위해 일부러 축조한 것으로 보이나 건물형식이나 건축법식상 호상재와 차이가 많다. 착량묘는 현재 재단법인 통영충렬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매년 음력 11월 19일 기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 윤이상 거리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박효자길 1 (도천동)

윤이상 거리는 통영시 서호시장의 끝에서 시작하여 직선으로 해저터널과 연결되는 곳으로 2001년 통영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지정하였다. 또한, 통영시에서는 윤이상선생의 음악세계를 기리기 위해 윤이상 기념공원에 도천테마파크를 건립하였다. 윤이상 거리는 해안도로에서 한 블록 안쪽에 위치하여 윤이상선생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통영의 맑은 바다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 윤이상 기념공원(도천테마파크)


- 홈페이지
https://www.utour.go.kr/utour.web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동)

윤이상 기념공원은 세계적인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터가 있던 통영시 도천동 일대에 건립되었다. 기념공원은 윤이상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 카페와 기념품샵 그리고 로비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가진 에스파체, 각종 공연과 세미나 등 실내행사가 가능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인 경사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 윤이상 생가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동)

윤이상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살아생전에 이미 세계 5대 작곡가로 꼽혔으며, 150여 곡의 음악작품을 남겼다. 서양음악의 모든 전통을 완벽하게 흡수한 바탕 위에 동양의 철학적 사상과 국악의 음향을 완벽하게 결합시켜 인류 음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6년 프랑스 파리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유학했고, 1959년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일곱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 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내던 중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당시 군사 정권에 의해 납치,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사형구형,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으나 스트라빈스키, 카라얀, 클렘페러, 리케티, 슈통하우젠, 아라우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주도한 구명운동으로 석방된 후 독일 국적을 취득하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축하 오페라<심청>을 비롯 수 많은 작품을 통해 전세계에 큰 영향과 명성을 떨쳤으며, 1977년부터 1987년까지는 베를린 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남북화합을 위한 1990년 남북통일 음악제를 주관하는 등 음악을 통한 통일 운동에도 평생을 바쳤다.1995년 11월 3일 살아생전의 소원이었던 고향 방문과 귀국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윤이상선생의 음악세계를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윤이상선생의 생가와 인접한 지역의 거리를 2001년 2월 윤이상거리로 지정하고 각종 조형물을 설치 관리하고 있으며, 2010년 3월 생가가 있었던 도천동 주변부지에 윤이상기념관을 개관하였다.


⊙ 충무교와 통영운하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옛날 착량묘가 있던 자리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아치형 현대식 교량인 충무교가 1964년에 기공하여 1967년 6월에 개통되었고, 충무교의 통행량 증가와 노후화로 1993년 4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상판을 교체하고 교각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호수 같은 바닷물 위로는 배들이 다니고, 그 바다 밑으로 뚫린 해저 터널엔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바다 위로 만들어진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공중다리(자동차가 다니는 "통영운하")는 하늘과 바다와 바닷 속이 하나로 이어진 한국 유일의 3중 교통로를 자랑하는 곳이다. 더욱이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늘 배들이 오가는 통영 운하의 주변 경관은 도시의 자연스런 조화가 극치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동양의 나폴리"라 불려져 오고 있다.


⊙ 김춘수 유품전시관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해평5길 142-16

통영시는 통영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평동 옛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건물 4층을 리모델링해 2008년 3월 28일 ‘꽃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의 유품전시관을 개관하였다. 전체 면적 164.8㎡ 규모의 전시관에는 김 시인의 육필원고 126점과 서예작품, 액자, 사진을 비롯해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와 옷가지 등 유품이 전시된다. 특히 전시관 한쪽에는 김 시인이 생전에 기거하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침대와 10폭 산수화 병풍, 액자 등을 넣어 ‘김춘수 방’을 꾸몄고 나머지 공간에는 옷가지와 책, 평소 쓰던 소지품, 사진 등을 전시해 시인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통영시 동호동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통영중 교사로 재직하던 1947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한 이후 2004년 향년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2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해 한국 시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 통영시립박물관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65 (도천동)

통영시립박물관은 통영 대표 박물관으로써 통영 시민에게 문화예술의 체험 기회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따라, 통영시립박물관을 산하기관으로 설립하여 통영 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국제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고 있다.통영시립박물관은 통영의 역사유물을 전시하고 기획하는 한편 예술, 디자인관련 세미나,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그밖에 공연, 영화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해평열녀사당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해평5길 131 (봉평동)

해평열녀 사당의 유래는 해평열녀의 성명이나 생활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살던 마을이름을 따서 『 해평열녀 』 라고 불려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는 그녀가 시집온 지 몇 달 뒤에 남편이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으로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이 빠졌다는 곳을 찾아가서 제를 지낸 다음 바다에 몸을 던져 사흘만에 남편의 시체를 안고 떠올라 마을 사람들이 그들 부부를 합장하였는데, 마을 뒷산 나뭇잎을 벌레가 열녀란 두글자를 새기면서 갉아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해평열녀의 정렬에 하늘도 감동한 것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사철 향을 올렸다고 한다. 『 해평열녀기실비 』 는 1932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 봉평동지석묘


- 홈페이지
http://www.utour.go.kr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해평6길 25

봉평동 지석묘는 봉평동 해안(지금은 바다매립으로 해안선이 훨씬 멀어졌다.)에 남아 있는 이 2기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분묘인 돌무덤이다.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축조형식에 따라 탁자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의 3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진다는데, 탁자식은 북방식이라고도 하며, 4개의 판돌을 세워 평면이장방형인 돌방을 만들어 그 속에 주검을 넣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으로 돌방이 지상에 드러나 있도록 되어있다. 기반식은 남방식이라고도 하는데 판돌, 깬돌, 냇돌따위로 지하에 돌방을 만들어 주검을 넣은 다음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개석식은 기반식과 비슷한 형식인데 기반식이 받침돌이 있는것에 반하여 개석식은 받침돌이 없는것을 말한다. 또 탁자식은 한강 이북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기반식은 한강 이남지역에, 그리고 개석식은 한국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봉평동지석묘는 아직 내부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구조나 껴묻거리 등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외형상으로 보아 받침돌 위에 넓적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북도 해안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석묘는 일본 구주지방의 지석묘와 닮은 점이 많아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묘제연구는 물론 일본과의 교류관계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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