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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주시] 기와골맷돌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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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골맷돌순두부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숲머리길 142

기와골맷돌순두부는 순수 국산콩으로 직접 매일 만드는 순두부로 요리하는 한식당이다. 외관과 인테리어에서 전통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영업을 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도 가능하다. 대표 메뉴는 순두부찌개다. 이 밖에 들깨순두부찌개, 손두부전골, 손두부, 파전, 만두, 콩국수 등을 맛볼 수 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순두부찌개

- 문의및안내
054-773-2692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평일 08:30~20:00(브레이크타임 15:00~17:00 / 라스트오더 19:30)
주말 08:00~20:00(라스트오더 19:30)
※ 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

- 주차시설
가능
요금(무료)

- 취급메뉴
순두부찌개 / 들깨순두부찌개 / 손두부전골 / 손두부 / 파전 외





◎ 화장실
있음(남/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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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이상복경주빵


- 홈페이지
https://www.gjbakery.com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숲머리길 212 (보문동)

신라천년문화를 느끼고 꿈을 키우며 추억을 만드는 경주 최대의 체험장

신라 천년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경주의 대표브랜드 이상복경주빵은 50년 전통 방식으로 빚어낸 명품 수제빵으로 이상복 장인과 함께한다. 경주빵만들기 체험은 장인정신과 열정을 느끼는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 경주 헌덕왕릉


- 홈페이지
http://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473-17 (동천동) 부근

형식은 원형의 토분(土墳)으로, 밑에 경덕왕릉식의 호석(護石)이 돌려 있다. 즉, 봉토 밑에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판석(板石)을 돌려 호석을 삼았고, 판석과 판석 사이에 탱석(撑石)을 세웠으며, 그 위에 갑석(甲石)을 덮었다. 또, 탱석 표면에는 방향을 따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었고, 호석에서 일정한 거리에 박석을 깔았으며, 그 밖으로 난간을 돌렸다. 난간 기둥에는 상 ·하에 구멍이 있어 기둥과 기둥 사이에 2개씩의 관석(貫石)을 끼웠는데, 이는 다른 왕릉과 같은 형식이다. 헌덕왕은 18년간 재위하였는데, 이 시대에 이미 통일신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재위기간 중에 2차례의 반란이 일어났고, 치적 또한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도 신라의 왕릉으로서는 호화롭게 축조된 것은 이례적이다. 기록에는 천림사(泉林寺)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였는데, 천림사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 능 남쪽에 있는 절터로 추측된다.

⊙ 보문숲머리먹거리촌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보문동)

경주시 보문동에 자리한 숲 머리 마을은 명활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옆으로는 드넓은 보문들이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마을이다. 진평왕릉과 보문 사지, 명활산성, 신라왕경 숲과 인접해 여행자들도 가볍게 들르기 좋다. 특히 명활산성에서 진평왕릉을 잇는 숲 머리 마을 뒤편 둑에는 ‘선덕여왕길’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해마다 봄이면 겹벚꽃이 만발해 현지인들에게 숨은 봄꽃 명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핑크색 겹벚꽃이 만발한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중간중간 쉬어가기 좋은 의자와 포토존도 만날 수 있다. 둘레길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옥마을이 보문 숲 머리 먹거리촌이다. 푸짐한 상차림의 한정식을 비롯해 숯불갈비와 매운탕, 오리구이, 순두부, 막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가 모여 있어 든든한 한 끼를 즐기기 좋다.

⊙ 경주 진평왕릉


-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제26대 진평왕의 능이다. 밑 둘레 약 10m, 높이 약 7m의 원형 토분으로 장식 없이 소박한 모습이다.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진평왕릉을 두고 ‘꼭 보아야 할 경주의 보물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평했다.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그는 진평왕릉을 이렇게 표현했다.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라고. 다른 왕릉이 무인상, 문인상, 돌사자, 호석과 돌난간, 능을 감싸는 도래솔 등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다면, 진평왕릉은 대신 아담한 숲을 갖고 있다.

*사진 출처: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 신라왕경숲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883-44

신라시대 수도인 왕경지구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경주 명활산성에서 분황사까지 5리, 즉 2km에 걸쳐 ‘오리수’라는 숲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자리한 신라 왕경 숲은 이 같은 신라시대 치수사업의 역사를 간직한 숲으로 재현됐다. 1,500년 전 서라벌의 왕들이 거닐던 숲으로 꾸며진 신라 왕경 숲은 지난 2007년 세계 문화엑스포 개최와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주요 관광지와도 가까워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쉬어가기 좋다. 아직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넓은 잔디밭과 푸른 가로수 덕분에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도 인기다. 신라 왕경 숲 근처에는 전통 한정식과 순두부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먹거리촌도 조성돼 있다.

⊙ 경주 버드파크


- 홈페이지
경주 버드파크 http://www.birdparks.co.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74-14

기존의 우리에 갇힌 동물을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새 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새들을 만지고 어깨에 올려보고 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독특한 방식이다. 새도 행복하고 구경하는 관람객도 행복한 구조로 설계가 되어 있다. 국내 최초의 체험형 화조원인 경주버드파크는 1층 전체가 생태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조류가 90% 정도를 차지하며, 파충류, 어류, 기타 소동물 등이 있다. 2층은 전시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외체험장이 있다.경상북도 1호로 전문동물원 박물관 등록기관으로 국제희귀 동물의 수입 및 전시가 가능한 시설이다.

⊙ 명활산성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경감로 322-33 (천군동)

명활산성은 경주의 동쪽 명활산 (해발 266m)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시대 산성이다. 입지상 남산성, 선도산성, 북형산성 등과 함께 신라 경주의 동쪽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왜구로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성곽이고, 유사시 왕성의 역할을 하였다. 성내에는 문지 7개소, 수구문지 4개소, 건물터로 추정되는 대지 6개소가 확인되었는데, 문지와 수구문지는 성벽이 붕괴하면서 덮이거나 파손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건물터에도 초석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개소 뿐이며 나머지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 밖에 연못이 2개소 남아 있으나 현재는 매몰된 상태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405년(실성왕 4)에 왜병이 성을 공격해 격퇴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고, 431년(눌지왕 15)에도 왜구가 이 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475(자비왕 18)부터 488년(소지왕 10)까지는 이 곳을 궁성으로 사용하였다. 선덕여왕 때에는 비담 등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되었다.
성 주변에서 551년(진흥왕 12)에 만든 [명활산성작성비]가 발견되어 공사 총책임자. 실무자, 공사기간 등 당시 축성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처음에 토성이었다가 이 시기에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명활산성작성비]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되어있다.
명활산은 경주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지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명활산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 경주 동궁원


- 홈페이지
경주 동궁원 http://gyeongjuepg.k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74-14 (북군동)

경주동궁원은 보문관광단지 입구에 위치하여, 농업 시험포장, 화훼재배 용도로사용되어 왔던 것을 농업을 관광자원화 하는 차원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관광 콘텐츠의 개발을 통해 사계절 체험관광시설을 조성하였다. 옛 안압지였던 동궁과 월지에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화초와 진금이수 즉 진귀하고 기이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문무왕 14년 삼국사기 기록과 신라의 관직명에 새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등 경주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콘텐츠를 스토리텔링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 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지금 이 곳 경주동궁원에 현대적으로 재현 하였습니다.경주의 역사적 배경을 스토리텔링하여 “동궁식물원”과 새전문 동물원인 “경주버드파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경주동궁원”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출저 : 경주 동궁원]


⊙ 경주레져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72 (북군동)

보문단지 내 위치한 경주레저는 카트. 서바이벌. 사륜구동차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24개월 이상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액티비티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핸들 조작을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자녀와 부모가 함께 탈수 있는 2인승 카트와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긴 카레이싱 코스가 있다.
시원한 자연을 배경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릴감 넘치는 산악바이크. 페이트탄을 이용한 사격. 6인 이상 참여 가능한 서바이벌 게임 등이 준비되어 가족단위는 물론 연인. 친구. 단체 등으로 경주에서의 액티비티를 원한다면 방문하기를 권한다. 모든 코스를 진행하기 전 안전 수칙과 교육, 안전모 착용은 필수이다.

⊙ 분황사


- 홈페이지
http://www.bunhwangsa.org
경주문화관광 https://www.gyeongju.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분황사는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으면서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으로도 유명하다.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 간 사찰로 명성이 높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법사도 오래 머물렀으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통일신라 이전에 세운 모전탑으로 원형은 5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 없으나 그중에서 지금은 3층(국보)만 남아있다. 신라탑은 전탑양식이 유행하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구조 모방 전탑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루었다. 통일신라의 모전탑 및 전탑은 안동, 의성, 제천 등지에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에 왜구들이 이 탑을 반쯤 헐어갔다고 한다.

이 탑은 바다속의 안산암을 갈아서 쌓은 것으로 1915년 탑을 수리하다가 사리장치가 든 돌 상자 속에서는 구슬과 금은으로 된바늘, 고려시대 화폐가 발견됨으로써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늘은 탑을 건립한 선덕여왕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1층 탑신 4면에 감실을 만들고 돌문을 달았으며 이 입구마다 좌우로 수문장인 금강역사상이 있고, 탑에는 돌사자가 놓여 있다. 금강역사상은 조각이 아름답고 입체감이 두드러져 삼국시대 조각 기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분황사 사찰 내에 마련되어 있는 돌우물이다. 바위틈 사이로 솟아오르거나 흘러내리는 물이 잘 고이도록 바위를 움푹하게 판 뒤,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아 시설해 놓은 모습으로, 겉면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의 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분황사 경내, 당시의 우물 석정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데 이 우물 속에 호국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우물에는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기슭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는 각각 통일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고 있었다. 원성왕 11년(795) 중국 당나라 사신이 이 용들을 물고기로 변신시켜 잡아가니,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이 사실을 아뢰며 남편을 찾아줄 것을 아뢰었다. 두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은 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었다. 1965년 우물 속에서 14구의 목이 부러진 석불들이 출토되었고이 석불들은 경주국립박물관 경내에 전시되고 있다.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한 것이며, 현재에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초석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약사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적,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분황사약사여래입상 등이 있으며 석등과 대석 같은 많은 초석들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이 한켠에 단정하게 쌓여 있다.

분황사화쟁국사비부는 분황사 내의 우물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이다. 낮은 직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많이 훼손되었다. 윗면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홈이 파 놓았고, 옆면에는 옅은 안상(眼象)을 새겼다. 고려 명종대(1170∼1197) 한문준이 건립한 화쟁국사비의 대석이 남아있는데,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諡號 :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이를 확인하는 글귀를 받침돌에 새겨두었다. 비는 임진왜란 후까지도 보존되었으나, 지금은 이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4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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