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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 동구] 황토시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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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시골집


- 홈페이지
http://0539822002.modoo.at/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604 (중대동)

황토시골집은 20여 년 전 24시간 포장마차로 시작해 조금씩 확장하여 지금은 1,000평의 규모를 자랑하는 음식점으로 성장했다. 모든 공간은 원적외선이 방출되는 황토로 지어졌으며 텃밭에서 직접 기른 제철 채소, 천연 재료로 만든 각종 양념 등으로 만들어 건강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옻 닭백숙, 닭볶음탕, 오리불고기 등과 메밀묵, 파전과 같은 안주류도 판매하고 있다.


※ 소개 정보
- 대표메뉴
닭백숙 / 닭도리탕

- 문의및안내
053-982-2002

- 쉬는날
매주 목요일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어린이놀이방여부
0

- 영업시간
10:00~21:40

- 주차시설
가능

- 취급메뉴
닭백숙 / 닭도리탕 / 오리불고기 / 산채비빔밥 등







황토시골집_음식3황토시골집_음식2황토시골집_음식1황토시골집_외관2



◎ 주위 관광 정보

⊙ 자연염색박물관


- 홈페이지
자연염색박물관 http://www.naturaldyeing.net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112길 17

자연염색박물관은 섬유, 염색, 민속에 관련된 유물을 수집‧보존해 우리 전통색의 원류를 찾고 한국 자연염색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문을 열었다.
박물관 견학은 세계공예예술실에서 시작한다. 아트샾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다양한 공예작품이 전시돼 있다.
1층 전시실의 중심 공간인 갤러리 아원은 자연염색, 전통공예, 섬유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유물실은 자연염색으로 제작된 전통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민속염직도구실은 자연염색과정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모아 놓은 곳. 물독, 술독, 시루, 소쿠리 같은 전통도구와 함께 침염기와 발효기, 증열기 같은 현대적 도구들도 전시돼 있다.


⊙ 파계 오토캠핑장


- 홈페이지
https://www.daegu.go.kr/env//index.do?menu_id=00000923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07-14 (중대동)

팔공산 파계지구 오토캠핑장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다. 대구광역시청을 기점으로 경대교와 백안삼거리를 지나 약 30분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울창한 숲과 계곡 덕분에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팔공산에 조성됐다. 대구 도심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8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캠핑장은 오토캠핑장 24면을 갖췄으며, 사이트 크기는 가로3m 세로3m, 가로 3.5m 세로 4.5m로 두 종류다. 텐트 바로 옆에 주차를 할 수 있어 편리하며, 사이트 사이를 막아줘 프라이빗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 자체가 산책로라서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이 많다. 내부에 매점은 없지만 가까운 거리에 슈퍼가 많아 불편함이 없다. 주변에 연계 관광에 적합한 파계사 등 사찰이 많다. 팔공산 주변에 음식점이 많아 원하는 음식을 사 먹기에도 좋다.

⊙ 노태우 대통령 생가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용진길 172 (신용동)

노태우 대통령 생가는 대구 동구 신용동 팔공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용동이란 명칭은 신령스러운 용이 하늘로 올라간 용지가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신용동에 위치한 용진마을에 가면 노태우 대통령 생가가 있다. ‘용의 머리’에 자리한 명당이라 하며,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 등이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진마을은 교하 노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주변은 봄철이면 복사꽃이 만발해 장관을 연출한다.
*사진 출처: 대구시 동구청

⊙ 대한수목원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446-42 (중대동)

대한수목원은 1991년에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무 한 그루, 꽃나무 하나씩을 매일 직접 심고 다듬으면서 조성됐다. 수목원 내에는 매실나무, 은행나무, 살구나무, 벚꽃나무 등 약 1,700여 가지의 각종의 나무와 꽃들이 피고 진다.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대구 시민은 물론, 포항, 경산, 구미, 부산, 울산 등 근교 지역 시민들도 찾아온다. 최근에는 중국, 대만 등의 외국 관광객들까지 찾고 있다.
*사진 출처: 대구광역시청

⊙ 회진당원의대사지비


- 홈페이지
http://www.dong.daegu.kr
http://www.cha.go.kr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건립연도는 1648년(인조 26년) 3월, 회진당 원의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신(碑身)은 원규형(圓圭形)으로 높이 63cm, 폭은 29cm, 두께 10cm 의 화강석이다. 비부(碑趺)는 높이 지상 16cm, 가로 59cm, 세로 49cm 타원형의 화강석으로 구성되어있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고 비신에 큰 균열이 나 있다.


⊙ 파계사


-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중대동)

* 영조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 파계사 *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淑嬪)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租稅)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이곳은 동화사와 더불어 대구 지방의 유명한 풍치지구이며,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의 말사로서 불상, 석등, 석불, 영조대왕의 어의가 보관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구도나 형식에서 특색을 갖추고 있고 필법과 채색 또한 품격을 지닌 뛰어난 작품으로 18세기초를 대표하는 불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파계사의 주요문화재 *
[산령각]
산신각이라고 하기도 한다. 산신각은 산신을 봉안한 건물로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 우리나라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짐작게 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사찰내에 봉안되게 되었다. 산신신앙은 우리나라 특유의 산악숭배신앙과 관련이 깊지만 조선시대 이후 차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신앙은 불교 본연의 것이 아니라 하여 전(殿)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閣)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설선당]
설선당은 강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원통전을 중심으로 적묵당과 마주하고 있다. 1623년(인조 1) 계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어 두차례(1646, 1725)에 걸쳐 중건하였고 1762년 지붕을 다시 잇는 공사를 시행한 후 1976년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다. 이 건물은 대중식당과 강습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양식과 가구 수법 등이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영각]
기영각은 영조대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뜻으로 이름한 전각이다. 1696년(숙종 35) 현응조사가 성전암(성전암)과 더불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1974년과 1983년의 두 번에 걸친 보수공사가 있었다. 건물은 화강석 바른층쌓기 기단위에 건립된 정면 3칸. 후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구조양식은 덤벙초석 위에 원주를 세우고 주상에 주두와 함께 앙서와 수서를 장식한 외일출목 주심포계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주두와 장식이 번잡하게 발달한 조선후기 공포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상부가구는 5량가이나 우물천장으로 가리어져 있다.
[적묵당]
'적묵당(寂默堂)'이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한다는 불교용어인 적묵(寂默)에서 따온 것으로 설선당과 마주보고 있는 'ㄱ'자형의 건물로 소박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진동루]
파계사 원통전 앞에 있는 누각으로 1715년(숙종 4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원래 물의 줄기가 아홉갈래고 흩어져 있다하여 물길을 다시 모은다는 의미로 파계사라 이름하였다 하며, 진동루는 파계라는 이름만으로는 이 곳의 기를 제압할 수 없어 기를 진압한다는 의미로 이름하였다 한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2층으로 가공하지 않은 방형의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아래층 어칸을 통로로 하고 측간의 뒷부분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에는 통간 우물마루를 했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부재가 다소 약한 감이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문은 모두 미닫이 유리문을 달아 어색한 면이 있으나 익공 등에서 볼 때 조선시대 중·후기 양식에 어울리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원통전]
원통전은 일반적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을 주불로 봉안하는 불전을 말한다. 파계사는 중심전각인 원통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선조 38) 계관법사가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조사때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건축양식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가구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후 둥근기둥을 올리고 있다. 법당 내부의 불단은 은해사(銀海寺) 백흥암(百興庵)의 수미단(須彌壇)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넣어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불단의 상부에는 보개(寶盖)를 설치하고 있다. 원통전 앞에는 좌우 양쪽에 당간지주와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수미단(須彌壇)은 사찰의 법당 등에 설치하는 수미산(須彌山) 형상의 단. 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온 상상의 산으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대구파계사건칠관음보살좌상및복장유물]
파계사의 주전인 원통전의 주존불이다. 고려후기 불상양식으로 삼중의 높은 보관과 통견의를 걸치고 있으며 온몸에 장엄하고 복잡한 영락을 표현,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가지고있다. 이 불상이 차지하는 큰 의의는 1979년 개금불사 때 복장(腹裝)되어 있던 영조대왕의 어의(御依)와 어의를 복장하게 된 경위와 불상의 건립 년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발원문을 발견하여 불상이 조성된 것이 최소 1448년 이전이라는 것과 불상 조각의 변천과 유사 불상의 편년을 가늠할 수 있게 된 점이라 할 수 있다.
[파계사 석조부도]
파계사 입구 오른쪽에 석축을 쌓아 조성(2기)되어 있다. 좌측부도는 절충장군 가선대부 보광당 전명대사지탑(1651년 효종2)으로 사각의 대석위에 6각의 석조를 놓고 2중으로 조각된 앙련좌 위에 부도가 설치되어 있다. 우측부도는 회진당원의대사지탑(1648년(인조26)으로 6각의 대석위에 연화문을 조각, 그 위에 일석으로 된 앙련과 부련이 있고 그 위에 부도를 설치하였다.
[팔공산파계사사적비]
파계사 사적비명이라 하여 파계사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신라 애장왕(800-808)때 심지왕사가 창건했으나 임진왜란으로 회진된 것을 1605년(선조 38년) 계관법사가 원통전을 시작으로 설선당 등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파계사 삼병조사(三甁組師)인 현응대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1693년(숙종 19년) 10월 5일 밤에 숙종의 꿈속에 현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왕이 현응대사에게 왕자 낳기를 부탁하는데 수락산(水絡山) 성전에서 100일 기도 끝에 이듬해 원자가 탄생하니 이가 후일의 영조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를 영조의 생전·사후의 복을 기원하는 축원당(祝願堂)으로 삼았다. 또한, 절 입구에 「대소인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를 세워 왕실 원당에 감히 말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반과 관료들로부터의 착취와 사역도 면하게 해주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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